최근 재벌가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은 최태원SK그룹(이하 SK) 회장(55)이다. 그룹 재계 서열은 3위지만 재벌 총수의 주목도만 놓고 봤을 때 1위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위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보다 월등히 앞선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의 판결 전까지 재계 안팎에선 '총수의 경영공백으로 인해 엄청난 손해가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성공에는 최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이 있어 가능했다' 등의 얘기가 나왔다. 부재시 위기론을 강조하기 위해 SK는 지난해 3분기 SK텔레콤의 호실적을 두고 자체적으로 평가절하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SK의 노력에도 불구(?), 대법원은 최 회장에게 징역 4년 원심을 확정했다. SK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업 정착 노력, 글로벌 국격 제고 활동 등 최 회장께서 그 동안 중점을 두어왔던 활동들이 이번 선고로 중단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최 회장 일가 구속 이후 SK의 상황이 급변하는 듯하다.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최 회장 구속 판결 직후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성장,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총수 부재에 대한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한 모종의 액션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최 회장 구하기가 실패로 끝나자 새로운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플랜B' 차원의 포스트 최태원 체제 전환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이 동시에 구속수감 되는 만큼 오너부재는 SK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경영인이 있다고 해도 대규모 투자 등의 최종결정을 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의 운영에 있어 최종 결정은 오너가 하는 것"이라며 "오너일가 중 누군가 최 회장의 빈자리를 메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물론 오너일가 중 한명이 그룹 총수로 나선다고 해서 과거 최 회장처럼 전권을 휘두르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SK는 지난 1년간 총수 부재 상황에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중심의 '따로 또 같이 3.0'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총수 부재 상황의 위기를 넘겨 왔다. 따로 또 같이 3.0 경영은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기본으로,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두고 산하 6개 위원회를 통한 집단 지도체제다. 이 같은 경영체제는 SK하이닉스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끄는 등 상당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 이끌 일종의 '장군'역할을 할 사람은 분명 있어야 한다. 전문경영인을 통한 그룹 경영관리는 가능하겠지만 과감한 공격경영을 펼치기에는 오너일가의 힘이 절대적이다.
일례로 SK는 지난해 STX와 ADT캡스 인수 의지를 불태웠지만 불발로 그쳤다. 또 동부하이텍 인수 의사를 과거 여러 차례 밝혔지만 현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일련의 사태는 그룹 내 경영 위기가 아닌 그룹 내 오너십의 위기다.
포스트 최태원 누구?
포스트 최태원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는 최신원 SKC회장과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이다.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과 삼남으로 적통성이란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신원 SKC 회장보다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 쪽에 무게추가 쏠리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은 최 회장과 의견을 자주 나눴던 막역한 사이로 최신원 SKC 회장보다 가까운 관계다. SK건설 부회장 재직 당시 재무상태가 취약하자 최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그다. 경영책임을 물어 자신의 지분을 사재출연하며 용퇴를 한 만큼 향후 경영 복귀의 폭도 넓혀 놨다.
무엇보다 SK를 이끌고 있는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 사람으로 분류된다. 김창근 의장은 SK케미컬 출신의 인물이다. 게다가 최창원 부회장은 지난해 SK와이번스 구단주와 SK경영경제연구소 부회장으로 보임됐다. 그룹의 심벌격인 야구단과 싱크탱크의 수장을 맡은 셈. 최 회장의 부재가 커보이는 가운데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의 움직임이 갖는 울림은 크다. 업계는 이같은 점에 주목, 최 회장으로 부터 모종의 언질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SK에게 필요한 것은 상징성을 가진 오너십 위기의 극복이다.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이야 말로 적임자에 가깝다는 평가다.
SK는 과거 형제경영을 해왔다. 최종건 창업주에서 최종현 명예회장의 경영을 펼쳤고, 이후 최태원 회장이 SK를 맡았다.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이 최 회장의 공백을 메운 뒤 최 회장에게 자리를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경우 자칫 경영권이 통째로 넘어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서기에는 지분이 부족하다는 게 오히려 장점으로 비춰지고 있다.(박스 기사 참조)
오너일가 중 제3의 인물 나올지도
최창원 SK케미컬 부회장 외에 거론되는 인물도 있다.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다. 최 회장의 동생으로 2006년 행복나눔재단 등기이사로 취임, 2009년 대표권이 있는 이사에 올라있다.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은 SK 지배구조상 최 회장에 이은 '2인자'다. 최 회장은 SK를 SK C&C를 통해 지배하고 있다. (주)SK의 최대주주는 SK C&C고, SK C&C의 최대주주가 최 회장이다.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의 SK C&C 지분율은 10.5%다. 최 회장을 대신해 경영에 나설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하다. 그룹 차원에서는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경영전면에 나설 것이란 데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현재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세형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