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추락사고 후, 생생한 그날의 악몽들

나성률 기자

기사입력 2013-07-10 15:42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나면서 부상 정도가 경미한 탑승객 일부가 속속 귀국하고 있다.

외상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건강하다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침착하게 탑승자들을 구조해낸 승무원과 기장 역시 외상이 없다해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 특히 평소 모든 일에 걱정이 많고 잠을 잘 자지 못할 만큼 예민한 성격을 가졌거나 추락사고 후에도 직업상 비행기를 타야 하는 승무원이라면 일을 할 때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

충격적인 사고의 후유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예상치 못한 사고나 상황을 통해 받은 정신적인 충격이 풀리지 않아 생기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가정 내 또는 집단폭력, 집단 따돌림(왕따)을 당했거나 난데없이 불치병 또는 난치병을 선고받은 후, 심한 모욕을 받았을 때, 교통사고와 자연재해 후에도 주로 생긴다. 참혹한 전장에서의 전투를 경험했거나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많게는 25% 가량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전쟁 당시 폭발 장면을 목격했거나 동료가 죽는 모습을 본 이후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불안장애가 나타나는 것. 실질적으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중 월남전 참전 용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에서 큰 외상을 입지 않았다 해도 자신이 근거리에서 사고를 목격했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사고 직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없다고 해도 1주일 후부터 악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지금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에만 관심이 쏠려 탑승객과 승무원들의 정신적인 충격과 그 문제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사고 후에도 비행기를 타야 하는 기장과 승무원의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말했다.

성격 예민한 이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취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개인의 성격에 따라 증상이 나타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매사 긍정적이고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보다는 생각과 걱정이 많고 성격이 예민한 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보다 취약하다.


증상 역시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띤다. 두통, 복통, 근육통과 같은 신체적인 변화가 있거나 우울증, 불안장애, 성격장애, 이인화 장애, 심하게는 정신분열증과 같은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심하게는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재경험과 회피, 과각성이다.

재경험은 자신에게 충격을 준 상황이나 사고 장면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고 당시 받았던 충격이 다시금 전해지는 경우다. 자신이 겪었던 장면이 꿈에 나타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있었던 일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사고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를 꺼리거나 애써 피하는 것인데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 이후 항공사 직원과 같이 사고를 연상시키는 관계자와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우를 '회피'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고 이후 신경이 극심하게 예민해지는 이들도 있다. 심하게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잠을 깰 만큼 조그마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과각성'이다.

이밖에도 멍한 상태 또는 우울, 불안 증세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삶의 의미를 부재하거나 사회적 자극 박탈, 환각과 망상, 다중인격장애라고도 부르는 해리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공포의 대상으로부터의 탈피가 치료의 목적

치료는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환자가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약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안정시킨 다음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두려움을 떨쳐내도록 한다.

치료기간은 대개 한 달 정도면 좋아지는데, 그 이상 지속되면 치료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된 환자 중 30%만 완전히 회복되고 10%는 좋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된다.

치료는 가족이나 친구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고 당시를 떠올리기 꺼려하는 환자에게 억지로 기억해내도록 유도하거나 반복적으로 질문하면 증상이 악화된다. 사고 조사를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묻는 것도 금물이다.

일부 환자의 경우 사고에 대한 죄책감과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료를 거부할 수 있어 꾸준히 치료받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화와 짜증을 쉽게 내는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마음을 바꾸도록 도와야 한다.

이병철 교수는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 직후 일부 탑승객들이 겪은 수분은 마치 수 시간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또 사고 당시 주위 사람들의 순간적 망설임이 위기에 처한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을 방치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며 "사고 피해자들이 불안해하고 쉽게 화를 낸다면 이러한 심리적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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