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도둑은 못한다'더니 처서(23일)를 지나자 아침 공기부터가 다르다. 이른 열대야에 지루한 장맛비를 퍼부어대던 여름이 가고 있다. 바캉스의 끝자락, 북적이던 여름 해변도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때문에 호젓한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이맘때의 바닷가가 그만이다. 다도해가 점점이 박혀 있는 전남 여수의 앞바다는 가을맞이 여정을 꾸리기에 적당하다. 완행버스와도 같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이 섬 저 섬을 거쳐 도착하는 사도와 추도는 삶의 그리움과 낭만이 짙게 배어나는 공간이다. 손바닥만 한 작은 섬 곳곳에 자리한 천혜의 비경과 순박한 섬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마음속에 여유를 찾게 해준다. 사도-추도(여수)=글·사진 김형우 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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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여수장 물건 값이 겁나게 올라 부렀데. 어찌케 추석을 쇨랑가 모르겄어."
"긍께 말이여."
"글씨, 주의보가 안내려야 쓰것는디~"
귓전에 들려 오는 소리만 들어도 정겹다. 이처럼 재미난 아침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화제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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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들의 이어지는 정담을 라디오 방송 삼아 다도해 구경에 나섰다. 마침 백조호 이해욱 선장(49)이 주변 섬에 대해 설명을 해주겠다며 조타실로 청했던 터다. 작은 배이다 보니 조타실과 선실이 툭 트여 한 방이나 다름없다.
이 선장은 사도를 찾는다니 "앞섬 추도도 함께 둘러볼 것"을 권한다. 들어가는 배편은 없지만 일단 입도하면 감탄이 절로 날 것이라고 했다. 추도는 풍광이 빼어난 데다 여수 지역의 유인도 중 사람이 가장 적게 살아(세 사람) 호젓한 섬기행지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것이다.
여수항을 미끄러져 나간 배는 장도~둔병도~상화도-하화도~낭도를 거쳐 사도에 이른다. 상화도와 하화도는 순천만으로 향하는 물 고기떼의 길목으로 여수 앞바다 최고의 어장을 이룬다. 때문에 이곳 섬에는 부자들이 많다고 했다. 이리(늑대)의 형상을 갖춘 '낭도'는 제법 큰 섬인데, 사도 등 인근 섬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섬이다.
올망졸망 섬들이 안고 있는 사연들을 하나 둘 듣다보니 어느덧 1시간 20분이 훌쩍 흘렀다. 야트막하면서도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사도(沙島)다.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사도 한 바퀴'
사도는 전남 여수시가 거느린 317개 섬 중 하나다. 정월대보름과 2월 영등, 4월 말 등 연간 5~6차례 바닷길이 열려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아직껏 이 섬을 찾는 외지인이 많지는 않아 한결 여유롭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사도'는 '바다 한 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본섬을 중심으로 추도, 중도(간도), 증도(시루섬), 장사도, 나끝, 연목 등 7개의 섬을 아우르는 작지만 큰 섬이다. 이들 7개의 섬 중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는 사도와 추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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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섬마을은 20여 가구. 스물 댓명의 주민이 농사와 고기잡이, 민박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추도를 제외하면 사도의 섬들은 걸어서 투어가 가능하다. 섬을 느릿하게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 사도 왼쪽의 연목과 나끝은 방파제로, 오른쪽 간도는 석교로 각각 연결돼 있다. 또 간도와 이웃한 시루섬과 장사도는 각각 모래해변과 바위-자갈 지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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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 위로는 퇴적층이 형성돼 있다. 마치 변산반도 채석강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책을 쌓아둔 것처럼 억겁의 세월을 거쳐 층을 이룬 지층이 장관이다.
간도와 시루섬 사이에는 양면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는 폭 50m의 모래해변이 드러난다. 조개껍질이 부서져 만들어진 사장이라 빛깔이 곱고 맑은 날이면 물색깔이 에메랄드 빛깔을 띤다.
사도의 섬들 중 볼거리가 가장 많은 시루섬은 왕성한 화산활동으로 이뤄졌다. 용암에 쓸려 내려가던 나무가 화석이 된 규화목과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리다 급격하게 식으면서 형성된 용(龍) 모양의 용미암, 마을 사람이 다 앉아도 널찍할 멍석바위, 얼굴바위 등 진귀한 기암들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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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마치고 마을로 접어들어서는 텃밭에 있는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지금 뭘 하시느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팥)따요" 라고 짧게 대답을 하고는 "점심은 자셨소?"라며 되물었다. 가뜩이나 시장기가 돌 던 차에 '이게 섬마을 인심인가'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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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에는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해 사라져 가는 것이다. 바로 모래가 그것이다. 백조호 이해욱선장에 따르면 근자에 들어 선착장 등의 건설로 조류가 바뀐 탓이라고 한다. 실제 사도 선착장 주변은 모래섬이라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래보다 자갈이 더 많았다. 무슨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정도였다.
선착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사도 처녀가 시집 갈 때까지 모래 서 말은 먹는다'는 옛말이 있을 만큼 모래가 많았던 곳"이라면서 "이러다가는 섬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정을 수북하게 담아낸 민박집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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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둬 부씨요. 이러고 사는 거이제. 쪼깐석 담아줄라먼 낯부끄러워 가꼬…"
찬은 한결같이 맛났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 반찬은 전부 장을 보지 않고 사도에서 자급자족 한 것이라고 했다. 흔한 미원도 전혀 쓰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7000원짜리 밥상 치고는 썩 훌륭했다.
"며칠씩 묵는 손님들이 있으면 머리가 쪼개질라고 안한다요. 똑같은 반찬을 내놓을 수 없응께로."
◆세 명의 노인만 살고 있는 섬 '추도'
추도는 사도의 앞섬이다. 일년에 몇 차례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사도와 연결 될 만큼 가까운 섬이다. 직선거리로 750m 남짓. 하지만 추도를 찾은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정기 배편이 없기 때문이다.
낚싯배를 빌려 추도로 향했다. 쏜살같이 물길을 가르며 내닫자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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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에 추도로 시집을 와서 60년이 넘게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도시로 나오라고 해도 여기가 속이 편하다고 했다.
"아파트에 가서 우둑허니 있는 것보다 여그서 콩 숨그고, 이럭저럭 지내는 게 뱃속이 편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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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사도-추도 나들이에 자연스레 일행이 된 미국인 브래드 스와트 씨(30)는 "섬 전체가 고요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며 "고향 덴버에는 바다가 없는데, 이번 섬여행으로 바다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됐다"며 흡족해 했다.
◆여행메모
가는 길=여수항에서 사도까지는 하루 3번 백조호(061-662-5454) 여객선이 오간다. 1시간 20분소요. 뱃삯은 1만 50원(편도). 사도에서 추도까지는 주민 배를 빌려야 한다(장원모 선장 016-9622-0019, 왕복 2만원<4~5명 기준>. 5인 이상 시 1인당 5000원씩 추가)
숙박=사도에서는 민박을 이용해야 한다. 5만원(5인실 기준). 식사 7000원. 안나네민박(061-666-9196), 포도나무민박(061-665-0019), 사도 한옥민박(061-666-0012).
맛집=갯장어 또는 참장어로 불리는 '하모'는 여수의 여름철 보양식으로 통한다. 회로 먹거나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데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으로 경도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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