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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 in 골프] 박인비의 조금은 다른 불안, 그리고 목표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8-01-11 22:52



박인비(30), 이름 석자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골프여제, 골든 그랜드 슬래머, 116년만에 부활한 올림픽 골프 금메달 획득, 최연소 명예의전당, 퍼팅의 달인…. 그는 사실 골프로 이미 모든 걸 다 이룬 사람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 한다. 못 가진게 대체 뭐냐고도 한다. 하지만 가진 만큼 잃는게 생긴다. 천하의 박인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물이 들고 나는 것과 같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차고 비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골퍼라면 꿈꾸는 거의 모든 성과를 이뤘지만 딱 그만큼 지켜야 할 게 생긴다. 기준이 달라질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불안'(Status Anxiety)에서 불안의 촉발을 사회적 지위(status)로 봤다. 원하는 지위를 얻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고, 반대로 이미 얻은 지위를 잃을지도 모르는 불안감도 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불안 상태가 야기되고 달라진다.


박인비는 전지훈련을 위해 1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공항 가기 전 던롭코리아에서 주최한 젝시오X 신제품 설명회가 열린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전훈과 올시즌을 앞둔 각오 등을 주제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 일텐데 새 시즌을 앞두고는 기대와 설렘, 불안, 두려움, 압박의 느낌이 모두 공존하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박인비의 불안, 그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불안은 철저히 개별적이다. 선수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 박인비는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그의 불안 역시 다를 것이다. 박인비의 위치에서 느끼는 불안이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 선수와 같을 수는 없다. 그 역시 지위의 압박을 받는다. 박인비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이 다르고 기대하는 수준이 다르다.


그 어떤 선수에게나 부담감은 적이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부담은 커지고, 이를 경험으로 회피한다. 박인비 역시 마찬가지. 그는 2016 리우올림픽 이후 허리 등 부상 등이 겹치며 투어 활동을 자제해왔다. 새해는 사실상 복귀 무대인 셈. 부상 재발 등 몸 걱정, 떨어진 감각 걱정 등 불안이 증폭될 법도 하지만 그는 애써 태연하다. 밝은 표정으로 "지금은 아픈데 없이 몸상태가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불안을 회피하겠다는 복안이다. "체력 훈련은 당연한 거고요. 그동안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져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집중을 하려고요. 특히 작년에 퍼터가 아쉬웠던 만큼 퍼팅 감각 찾기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목표 설정이다. 골든 그랜드슬래머에게 올시즌 목표는 무엇일까. "우승? 특히 메이저우승을 하고 싶어요.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는 US오픈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한국대회도 출전하려고요."


'최고'에 오른 자, 외롭다. 절대 목표 상실에 따른 정신적 공허감도 그 일부다. 같은 대회 우승을 다시 한다고 해도 첫 정복 때의 짜릿함은 아니다. 이미 한계효용이 체감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각고의 노력을 통해 큰 목표를 성취했을 때, 대견한 자신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순간이 잃어버릴 것에 대한 생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인지 모른다. 목표 달성의 방향을, 가치를 확장해야 할 시점인지 모른다. 그래서 함박웃음의 30%쯤은 잠시 미뤄둬도 괜찮다. 자신의 성취를 타인에게로 확장하는 위대한 걸음이 또 다른 방향타가 될 수 있다. 타인을 위한 성취 속에 100% 미소가 비로소 아름답게 완성될 것이다.

서른을 넘은 박인비가 잠시간의 쉼표를 내려놓고 다시 출발한다. 이제부터의 발걸음은 또 다른 의미다. 서른, 진짜 신명나는 잔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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