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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골프 전인지가 15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연습라운딩을 하고 있다.2016.8.15/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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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장난일까. 요란해도 너무 요란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현지시각 15일 올림픽 골프 코스, 오전부터 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강렬한 햇볕이 피부를 자극했다. 오후 2시쯤 극에 달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그늘을 찾고 싶었지만 마땅히 피할 곳이 없었다. 선수들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하지만 한 시간 뒤 언제 그랬느냐 듯 날씨는 돌변했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세찬 바람에 어지럽게 휘날리더니 이내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코스를 강타했다. 기온도 뚝 떨어져 추위까지 엄습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자연의 심통에 선수들도 넋이 나갔다. 이날 만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날씨는 매일 반복되는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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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선수가 15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여자골프 공식 연습 라운드 에서 리디아 고 아버지 고길홍씨가 유심히 지켜 보고 있는 가운데 1번홀 티샷을 치고 있다./2016.8.15/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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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적은 사람이 아닌 자연이었다. 올림픽 여자 골프 시계가 116년 만에 다시 돌아간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대회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재개된다.
세계 최강인 한국 여자 골프는 '드림팀'을 구성했다. 박인비(28·KB금융그룹· 세계랭킹 5위) 김세영(23·미래에셋·6위) 전인지(22·하이트진로·8위) 양희영(27·PNS창호·9위)이 한국시각 17일 밤 1라운드에 돌입한다.
변화무쌍한 날씨 뿐이 아니다. 바하 다 치주카 해변에 있는 이 골프장은 야생 동·식물의 천국이다. 카피바라, 카이만 악어, 나무늘보, 보아뱀, 원숭이, 올빼미 등이 서식하고 있다. 만약 야생 동물에 의해 볼이 사라질 경우 본 사람이 없다면 '1벌타'로 타수를 잃게 된다. 여러모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골프백이 하루 늦게 도착해 이날 첫 연습라운드를 가진 전인지는 코스를 돌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3번 홀에서 친 샷이 해저드 근처로 날아갔고, 공을 찾다 '거대한 쥐'를 발견했다. 대형 설치류 카피바라였다. 생김새는 쥐와 비슷하지만 체중이 날씬한 여자보다 무거운 60㎏을 훌쩍 넘는다. 전인지는 "해저드에 볼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거대한 쥐가 옆에 있더라.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무섭기도 하더라. 그래도 안 나오면 좋겠다. 해저드 근처에 볼이 안가는 게 좋겠지만 겁을 내지 않고 내 플레이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 후 "그 쥐가 잔디를 다 뜯어먹고 있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박인비는 "나는 악어도 봤다. 그런데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고 거들었다. 김세영은 "올림픽 코스는 자연과의 싸움이 강하다. 어떻게 자연과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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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선수가 15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여자골프 공식 연습 라운드 에서 박세리 감독과 마지막 18홀 어프로치샷 라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2016.8.15/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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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골프는 국가당 2장씩 출전권이 주어진다. 다만 세계랭킹 15위 이내 선수라면 같은 국가라도 4명까지 나설 수 있다. 한국이 유일한 4명 출전국이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메달을 딸 확률이 가장 높다.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이다. 출전 선수 60명이 나흘간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를 통해 메달을 가린다. 박세리 감독이 이끄는 여자 골프 대표팀은 내심 금-은-동 독식을 노리고 있다.
왼손 엄지 손가락 인대 손상으로 올림픽 출전까지 불투명했던 박인비는 "어렵게 올림픽에 오게 됐지만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다. 후회없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며 "바람이 불지 않으면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바람이 변수다. 코스를 파악할 시간도 짧고 그린 주변 굴곡이 심하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인지는 "리우에 오기 전 한국을 다녀왔다. 더위가 정말 심하더라. 열대야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잤다. 국민들이 시차 때문에 골프 경기를 밤과 새벽 시간대에 보게 될 텐데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전인지가 첫 발을 뗀다. 전인지는 폴라 레토(남아공), 니콜 라르센(덴마크)과 함께 17일 오후 7시52분 경기를 시작한다. 오후 9시3분에는 박인비가 출전한다. 저리나 필러(미국), 아사아라 무뇨스(스페인)와 한 조로 묶였다. 양희영은 이민지(호주), 잔드라 갈(독일)과 함께 오후 10시36분, 김세영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에리야 주타누간(태국)과 함께 오후 10시58분 1라운드를 시작한다. 세계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안나 노르드크비스트(스웨덴), 찰리 헐(영국)과 함께 맨 마지막 조에 포진, 오후 11시 9분 1번 홀에서 경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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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골프 양희영이 15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연습라운딩을 하고 있다.2016.8.15/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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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은 "국민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데 여기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좋은 성적으로 메달권에 입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 좋은 모습을 보여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양희영도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참가해 영광이다. 준비한대로 하려고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쉬운 자리는 아니다. 준비한 것을 최선을 다해 쏟아내겠다"고 덧붙였다.
자연이 최대 적이지만 역행해선 꿈을 이룰 수 없다. 벗을 삼고, 즐겨야 한다. 사상 첫 골프 올림픽 메달을 향한 태극낭자들의 도전, 그 막이 오른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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