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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패션의 혁명가' 리키 파울러, 한국오픈서 프로 첫 우승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1-10-09 15:56


'홈메이드 스윙.' 전문적으로 골프를 배워 본 적이 없다. 집에서 스스로 익힌 스윙이었다. 15세가 될 때까지 미국주니어골프협회 대회에 한 차례도 출전하지 않았다. "중산층 출신의 나 같은 선수가 개인전용 클럽 출신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다"는게 그 이유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에게 골프는 운명처럼 다가 왔다. 3세에 두 개의 선물을 받았다. 일본인 할아버지에게 받은 골프 클럽과, 1986년 모터 크로스데회에서 우승한 스타출신의 아버지 로드에게 받은 산악용 자전거. 골프와 모터 크로스를 모두 즐기던 소년은 15세에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런데 하늘이 점찍어준 것일까. 그해 자연스럽게 진로가 결정됐다. 사막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 사고를 입어 다리 뼈가 세 곳이나 부러진 것. 왼쪽 무릎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골프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 우물만 파자 잠재력이 폭발했다. 2007년 워커컵(아마추어국가대항전)에서 팀의 우승의 주역이 됐다. 아마추어 무대를 석권했고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2010년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신인왕에 빛나는 리키 파울러(23·미국)의 얘기다. 파울러는 2009년 PGA투어 데뷔 이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산악용 자전거의 특성을 골프에 접목시킨 것이 주효했다. 빠른 속도감으로 그린을 뜨겁게 달궜다. 샷을 준비하며 치기까지 평균 16초.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없다. 코스 공략도 공격적이다.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독특한 패션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색으로 맞춰 입고 나오는 패션은 순식간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뉴에라 스타일 모자(앞 창이 일자로 뻗은 모자)는 골프 모자 스타일의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다. 십대 주니어 골퍼들이 그의 패션에 열광했고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타이거 우즈의 몰락 이후 스타플레이어에 목말라 있는 PGA 투어에는 단비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스타가 아닌 스타플레이어가 되기에는 한 가지가 아쉬웠다. 투어 데뷔 3시즌 동안 프로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 지난 시즌부터 준우승만 세 차례 했다. 그러다보니 매 대회를 앞두고 "우승을 오래 기다리고 있다"고 출사표를 던질 정도다.

이랬던 그에게 한국이 생애 첫 승의 기억을 안겨준 기회의 땅이 됐다. PGA 투어는 아니지만 첫 우승으로 인기와 실력을 동시에 얻었다. 파울러는 9일 천안 우정힐스골프장에서 열린 코오롱 제54회 한국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5개, 보기 2개로 3언더파를 기록하며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상금은 3억원. 트레이드 마크인 오랜지색 옷을 입고 나와 일궈낸 성과였다. 1라운드부터 선두를 유지하던 그는 나흘 내내 최고의 컨디션을 보였다. 대회 3라운드에서는 8타를 줄이며 코스레코드 타이를 기록하기도 했다. 위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플레이였다. 내셔널 타이틀대회인 한국오픈에서 외국인 우승자가 나온 것은 2007년 비제이 싱(피지) 이후 4년만이다.

한편, 디펜딩 챔피언 양용은(39·KB금융)은 파울러와 동반 플레이를 펼치며 추격에 나섰지만 4타를 잃고 무너져 5언더파 279타로 4위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 중에는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국가대표 출신 김민휘(19·신한금융)가 7언더파 277타로 단독 3위에 올라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세계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7언더파 64타를 몰아치며 최종합계 10언더파 274타로 단독 2위에 올랐다.
천안=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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