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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우승해요?"(아들)
"글쎄, 알수 없겠는데"(프레이저)
"우승해본적 있어요?"(아들)
"아직 없지"(프레이저)
2주가 지난 13일(한국시각) 프레이저는 PGA투어 세인트주드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내게도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다"며 감격해했다. 그러면서 2주전 자신의 꼬맹이 아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때로는 아들이 너무 공격적인 질문을 해서 힘들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아들아, 아빠도 우승했단다"라며 감격했다.
프레이저는 1998년 PGA 투어에 데뷔했지만 우승은 단 한번도 없다. 세계랭킹은 583위. 최고성적은 14년간 준우승 2회. 겨우 겨우 시드를 유지하는 생활을 했다. 자주 허리가 아팠고, 발목도 말썽을 부렸고,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렀다.
프레이저는 "사실 요 몇년간 은퇴도 생각했고, 스포츠 마케팅이나 매니지먼트 일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다. PGA 투어 사무국 직원 자리도 알아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골퍼의 꿈을 그냥 버릴 순 없었다. 2008년 12월에는 또 다시 그 지옥과도 같다던 퀄리파잉스쿨(시드확보 예선전)을 또 치렀다. 큐스쿨의 6일간 사투는 생활고의 다른 이름이었다. 프레이저는 "최근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다"며 기자회견장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우승상금으로 100만8000달러(약 11억원)를 받았는데 2009년과 2010년 두 시즌 동안 벌어들인 상금(94만 달러)을 능가하는 액수였다. PGA 골퍼가 연간 50만달러의 상금을 받는다고 하면 저축은 꿈도 못꾼다. 캐디와 코치, 투어활동 비용 등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 시즌 상금이 최소 100만달러는 돼야 어느정도 생활이 가능하다.
누구에게는 우승이 부담 그 자체다.
같은날 재미교포 민디 김(22·한국명 김유경)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테이트 팜 클래식에서 청야니(대만)와 챔피언조에서 맞붙었다. 청야니에 1타 뒤진 상태에서 경기를 했는데 민디 김은 제풀에 쓰러졌다. 티샷이 흔들리고 퍼팅도 1,2,3라운드와는 달랐다. 결국 청야니는 합계 21언더파로 우승했고, 민디 김은 오히려 1타를 잃으며 공동 5위로 대회를 마쳤다.
아직 우승이 없었던 민디 김. 3라운드를 마친 뒤 "그냥 편하게 경기하려 한다. 청야니와 자주 라운드, 그것도 챔피언 라운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를 즐기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승이라는 크나큰 목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몸은 벌써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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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대회에서 WINNER는 1명이다. 우승자를 제외하고는 돌려말하면 모두 패배자(LOSER)다. 물론 준우승을 한 선수를 두고 패배자라고 말하지 않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우승자에게 쏟아진다. 우승은 최고라는 의미부여가 된다.
민디 김 말고도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이야기는 많다. 미국 무대에서 준우승만 무려 5번을 한 김송희가 있다. 역전패도 당하고, 쫓아가다도 무너졌다. 이는 실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이다. 우승을 생각하면 머리속이 텅텅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준우승이 아무것도 아닌 성적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승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김송희는 2006년 미 LPGA 2부 투어인 퓨처스 투어의 영웅이었다. 5승을 거두며 최고 자리에 우뚝 서며 단번에 1부 투어에 합류했다. 하지만 TV에서나 보던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부담이 커졌다. 데뷔 첫해 부진을 씻고 이후 본 모습을 되찾았지만 마지막날만 되면 이상하게 흔들렸다. 심리치료도 병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묘수가 생기지 않는다. 실패의 반복 때문에 부담이 생기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고 과도한 긴장은 근육마저 움츠러들게 한다.
골프는 99% 심리게임
그렇다면 나머지 1%는? 그것도 심리게임이다. 타이거 우즈가 빠른 시일내에는 다시 우승하기 힘들거라는 전망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메이저 14승에 70승 이상을 거둔 우즈지만 2009년 11월부터 우승이 없다.
예전에는 우즈만 보면 울렁증이 생겼던 선수들이 이제는 마음 편하게 플레이 한다. 상대가 무너지지 않으면 이쪽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마음이 쫓기는 입장이 된 우즈는 급할 수 밖에 없다.
아마추어 골퍼 사이에서의 스트로크 게임에도 비슷한 법칙이 있다. 라운드전 핸디캡을 적용해 고수는 내기 골프에 앞서 미리 실력 차에 맞춰 '핸디캡(보통은 3~10타 정도의 금액)'을 주고 티오프를 한다. 하지만 전반 9홀이 될때까지 줬던 핸디캡을 다 회수하지 못하면 오히려 급해지는 쪽은 고수다. 이후부터는 더 잘 쳐야지 하는 생각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하수는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더 잘 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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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감에도 사이클이 있다. 올해 서희경은 미국에서 아직 우승이 없다. 우승,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오진 않는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