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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 데뷔 무산? 오히려 잘됐다…양민혁은 지금 '손흥민의 길'을 걷고 있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25-01-30 13:00


PL 데뷔 무산? 오히려 잘됐다…양민혁은 지금 '손흥민의 길'을 걷고 있…
출처=QPR 구단 SNS

PL 데뷔 무산? 오히려 잘됐다…양민혁은 지금 '손흥민의 길'을 걷고 있…
출처=QPR 구단 SNS

[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하부리그 임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토트넘 홋스퍼 데뷔를 고대하던 양민혁(19)이 챔피언십(2부리그) 임대길에 올랐다. 퀸스파크레인저스(QPR)은 30일(한국시각) 올 시즌 남은 기간 동안 토트넘으로부터 양민혁을 임대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양민혁은 2024~2025 챔피언십 17경기에서 QPR 소속으로 뛰게 됐다.

QPR은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팀이다. 박지성(현 전북 어드바이저)이 201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입단한 팀. 양민혁과 강원F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윤석영도 2013년부터 2016년까지 QPR에서 뛴 바 있다.

마르티 시푸엔테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QPR은 챔피언십 29경기를 치른 현재 승점 38로 전체 24팀 중 13위. 승격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6위의 미들즈브러(승점 44)와의 격차가 크지 않다.

양민혁이 이번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임대에 나설 것이란 관측은 계속 제기돼 왔다. 영국 현지 매체들을 중심으로 토트넘에서의 1군 데뷔보다는 하부리그 임대 등을 통한 기회 제공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양민혁은 지난해 K리그의 히트상품이었다. 고교생 신분으로 강원FC 유니폼을 입고 K리그1 38경기에 모두 출전, 12골 6도움을 기록했다. '영플레이어상'은 당연지사.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성인 대표팀 부름을 받기도 했다. 시즌을 마친 뒤 토트넘 입단을 위해 떠날 때만 해도 기대 만발이었다.

그런데 현지 도착 후 심상치 않은 메시지가 이어졌다.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양민혁에 대해 "현재로서는 특별한 계획은 없다. 적응하도록 두고 있다"며 "양민혁은 아직 매우 어리다, 지구 반대편에서 왔다. 그곳(한국)의 경쟁 수준은 이곳(잉글랜드)에서 직면하게 될 수준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적응할 시간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토트넘 전담기자인 폴 오키프는 최근 양민혁의 상황에 대해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 레슨을 받고 있다. 추후 적응 속도에 따라 1군 스쿼드에서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줄 수도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아치 그레이, 루카스 베리발 같은 선수보단 토트넘 유소년 아카데미 수준에 더 근접해 있다"고 주장했다.


PL 데뷔 무산? 오히려 잘됐다…양민혁은 지금 '손흥민의 길'을 걷고 있…
출처=QPR 구단 SNS

K리그와 프리미어리그의 수준 차를 고려하더라도 1군 경험이 충분한 양민혁을 두고 '아카데미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양민혁이 K리그에서 출전 경험을 쌓은 건 맞지만, 잉글랜드 축구 문화에 적응이 최우선이었다. 동료, 코치진과 소통을 위한 영어나 현지 문화 적응 없이는 출전해도 최상의 퍼포먼스를 펼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 질 만했다.

양민혁은 지난해 강원에서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강원 유스 시절 많은 기회를 얻고, 준프로 계약을 거쳐 지난해 1군에 데뷔했으나, 풀타임 시즌을 보낸 건 작년이 처음이었다. 시기 상 따져보면 현재는 지난해 바닥을 친 체력을 갓 회복하고, 새 시즌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 출전을 위한 100%의 컨디션이라 보긴 어렵다. 이런 가운데 무작정 스쿼드에 포함돼 경기를 치렀다간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결국 현지 적응과 체력 회복이 실전 데뷔를 위한 1차 목표였다. 이번 QPR 임대는 양민혁이 이런 1차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QPR 역시 양민혁에 대한 '기회 제공'을 강조했다. 크리스티안 누리 QPR CEO는 "양민혁을 영입하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그에게 처음으로 잉글랜드 축구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게 되어 기쁘다"며 "양민혁은 토트넘에 입단하기 전 몇몇 엘리트 클럽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QPR은 과거 한국 축구의 재능 있는 선수들과 함께한 역사가 있다. 양민혁과 함께 그 이야기의 새로운 장을 쓰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런 양민혁의 행보는 '캡틴' 손흥민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PL 데뷔 무산? 오히려 잘됐다…양민혁은 지금 '손흥민의 길'을 걷고 있…
AFP연합뉴스
손흥민의 성공 출발점도 결국 현지 적응이었다. 6개월 코스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나 손흥민은 축구 뿐만 아니라 독일어 학습을 위해 연장 수업까지 받는 열의를 보였고, 이후 사비를 털어 현지에서 축구를 배웠다. 청소년 월드컵 활약이 더해져 독일 현지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2010년 함부르크에 입성하면서 전설의 문을 열었다.

손흥민은 지난달 16일 사우샘프턴전 후 스포츠조선과 가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뭘 해 준다기 보다는 이제 양민혁이 와서 경험해 보고 느껴보고 부딪혀 봐야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사람이 항상 누군가 얘기해 준다고 해서 느끼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경험해서 부딪혀보고 느끼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배운다고 생각을 한다"며 "와서 분명히 어려운 시간도 있을 거고 좋은 시간도 분명히 있을 것인 만큼 좋은 경험하고 또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찍이 경험했던 자신의 길처럼, 양민혁도 차츰 문을 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조언이었다.

K리그에서 입증한 기량은 잉글랜드로 가는 밑바탕이 됐다. 짧은 적응기를 마친 뒤 실전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양민혁은 지금 손흥민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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