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 4강, 남아공월드컵 16강 역사를 쓴 '레전드' 정해성 감독이 카타르월드컵 포르투갈전 현장에서 직접 목도한 후배들의16강 쾌거에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후배들, 정말 대단합니다!"
한일월드컵 4강, 남아공월드컵 16강 역사를 쓴 '레전드' 정해성 감독(대한축구협회 지도자 강사)이 한국축구 12년 만의 16강 쾌거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히딩크호, 허정무호 수석코치,부천SK, 전남 드래곤즈 감독을 거쳐 KFA심판위원장, 슈틸리케호 수석코치를 역임한 후 2년 전까지 베트남 호치민FC 감독으로 현역 지휘봉을 잡으며 국내외 지도자, 행정가를 두루 경험한 정 감독은 지난해 말부터 '지도자들의 지도자'인 KFA 지도자 전임강사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현장에선 대한축구협회 참관단의 일원으로 참가해 후배들의 분투를 직접 지켜봤다.
정 감독은 "어쩌다 보니 한국 축구 역사의 16강 현장에 다 있게 됐다"며 미소 지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당시 히딩크 감독의 코치로 일했던 정 감독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허정무 감독의 수석코치로 일하며 사상 첫 원정 16강 역사를 썼다. 2015년 캐나다여자월드컵에선 윤덕여 감독이 이끌던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단장으로 동행해 사상 첫 16걍을 함께 했고, 2022년 카타르에선 참관단으로 현장에서 후배들의 쾌거를 목도했다. 2002년 6월 14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1대0으로 이기고 첫 16강행에 성공했던 '히딩크호'의 코치가 2022년 12월 3일 20년 만에 '벤투호'가 포르투갈을 다시 이기고 16강행을 결정 짓는 장면을 목격했다. 4일 귀국한 정 감독이 대한민국 16강 현장의 감동을 전했다.
축구대표팀이 28일 오후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가나와 경기를 펼쳤다. 후반 조규성이 동점골을 넣었다. 환호하고 있는 조규성. 알라이얀(카타르)=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11.28/
가나전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제외하곤 역대 월드컵에서 2차전은 늘 힘들었다. 2차전 징크스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역시나 힘든 경기였다. 전반에 쉽게 실점하고 힘들게 경기를 끌고 갔는데 후반 나상호, 이강인 교체카드가 맞아들었다. 코칭스태프의 판단이 있겠지만 이강인은 선발로 써도 충분히 좋을 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월드컵에서 거침없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 차세대의 핵심이 될 선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손흥민의 부상으로 인해 옆에서 황의조, 황희찬의 역할이 필요했는데 황의조는 소속팀에서 많이 뛰지 못해 힘들었고, 황희찬은 부상으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날 나상호와 조규성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해줬다.
3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이 포르투갈에 2대 1로 역전승했다.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 알라이얀(카타르)=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12.03/
포르투갈전
포르투갈전은 다들 응원했지만 객관적으로 힘든 상대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수비라인이 걱정이 됐다. 권경원, 김영권이 포르투갈의 스피드를 어떻게 공략할까 걱정했다. 김민재 없는 수비라인을 걱정했는데 정말 5분 만에 실점하니 큰일 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스를 찾고 안정이 됐고, 사이드백에서도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잘 버텨줬다. 걱정을 제일 많이 한 한두 포지션이 끝까지 잘 버텨내 준 것이 승리에 큰 힘이 됐다. 손흥민은 부상도 그렇지만 집중적인 마크를 당하면서 힘든 상황이었는데 다들 '오늘은 손흥민이 해줘야하는데'하고 다들 바랐다. 축구인들이 흔히 하는 우스개 중에 '공격은 89분 놓치다가도 마지막 1분 결정지으면 영웅이 되고, 수비는 89분 잘 버티다 1분 놓치면 역적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날 역전골이 그랬다. 역시 큰 선수답게 해줬다. 3명의 수비수가 달라붙는데 상대 수비수 가랑이 사이 그 공간 밖에 없는데 그걸 뚫어냈다. 황희찬이 손흥민을 따라 끝까지 달려, 빠져들어간 부분도 정말 좋았다. 만약 손흥민 혼자에게 맡겨놓고 따라들어가지 않았다면 그 훌륭한 골은 없었을지 모른다. 손흥민의 템포를 죽인 침착한 패스의 타이밍도 대단했다. 16강을 빚어낸 이 한 골로 한국 축구를 살렸다.
2006년 남아공월드컵 수석코치 시절.
2002년 한일월드컵 코치 시절.
AGAIN 2002
최종전 포르투갈은 '2002년 한일월드컵 데자뷰' 느낌도 있었다. 내심 쉽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브루노 페르난데스 같은 프리미어리거가 빠진다 해도 포르투갈은 H조에서 일단 최고 전력이라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02년, 2010년 모두 그라운드에서 16강을 경험했고, 16강을 관중석에서 보게 된 건 처음이었는데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고 벤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떨리더라. 자동으로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더라. '위에서 지켜보면 이런 마음이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선수들이 승리 후 2002년 때와 똑같은 '단체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하고 선수단이 우리 앞에 왔는데 뭉클하고 흐뭇했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 후배들!'
2010년 남아공 때 생각도 많이 났다. 그때 우리는 우루과이와 16강에서 붙어 패했고, 가나-우루과이의 8강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스의 핸드볼 반칙, 퇴장 사건이 있었는데 가나가 페널티킥을 못 넣고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우루과이가 4강에 올라갔었다. 가나가 복수라도 하듯 마지막 추가시간 교체까지 해가면서 시간을 끌었고(0대2 패), 이번엔 가나의 도움으로 우리가 (1골 차로) 16강에 올라가게 됐다.
브라질전을 앞둔 태극전사들에게 한마디
2010년 남아공에서 원정 16강행에 성공한 후 강호 우루과이를 만났다. 그땐 비도 살짝 왔던 같은데 비록 1대2(수아레스 2골, 이청용 1골)로 패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잘했다. 우리 팬들도 결과보다는 내용을 본다. 브라질은 자타공인 FIFA랭킹 1위, 세계 최고의 팀이다. 최선 외엔 방법이 없다. 팬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팀을 위해 후회없이 경기하고 온다는 각오, 좋은 축구를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맞붙길 바란다. 변수가 많은 월드컵이다. 지금껏 잘해왔듯이 벤투 감독 지시에 따라 일단 잘 회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경기력을 후회없이 펼쳐놓은 후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정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