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카이아스두술데플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배승현 안산 그리너스 U-18 감독과 양팀 선수단이 21일 연습경기를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카시아스두술데플림픽 축구대표팀
"강호 우크라이나전을 앞두고 최고의 평가전이 됐습니다."(김영욱 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 축구대표팀 감독) "우리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과 배움이 됐습니다."(배승현 안산 그리너스 U-18팀 감독)
21일 경기도 안성 안성맞춤축구장, 카시아스두술데플림픽(청각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하는 축구대표팀과 안산 그리너스 U-18팀이 격돌했다. 카이아스두술데플림픽 지휘봉을 잡은 김영욱 감독(용인대 코치)이 연습경기 상대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선배' 배승현 안산 그리너스 U-18 감독이 선뜻 손을 내밀었다. 안산 구단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4일 브라질 출국을 사흘 앞두고 대표팀의 마지막 평가전이 전격 성사됐다.
한국 축구의 데플림픽 역대 최고 성적은 198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회 8강. 역대 최고 성적 '동메달'을 목표 삼은 한국은 이번 대회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 '지난 대회 준우승팀' 우크라이나, '3위팀' 이집트, '남미 강호' 아르헨티나, '유럽 강호' 프랑스와 한 조다.
K리그 주니어리그 중상위권, 빠르고 강한 안산 유스들은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가 됐다. 전반은 팽팽했다. 전반 15분만에 안산 조우영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불과 4분만인 전반 19분 데플림픽대표팀의 환상적인 세트피스 동점골이 작렬했다. 짧은 컷백 패스에 이어 센터백 박한솔이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전반 22분 안산 차도경의 골이 터지며 1-2로 뒤진 채 전반을 마쳤다.
축구 현장 지도자들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말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소리 없는 그라운드, 청각장애 선수들의 강한 눈빛 호흡은 인상적이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쉴새없이 고개를 돌리고, 서로의 공간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수시로 벤치 감독을 바라보며 지령을 캐치해, 빠르게 공유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쉴새없이 강한 압박과 파이팅을 독려했고, '대표팀의 입' 조안나 수어통역사가 감독의 지시를 열정적인 몸짓으로 전달했다.
후반 안산의 공격은 더 거세졌다. 후반 5분 안산 박성민의 쐐기골에 이어, 후반 20분 추민진, 후반 30분 김재겸, 후반 35분 오동은의 연속골이 터졌다. 대표팀의 1대6패. 90분 풀타임 후 토너먼트 대비용 '승부차기' 대결도 이어졌다. 데플림픽대표팀의 슈팅은 호쾌하고 간결했다. 키커 전원이 깔끔하게 골망을 흔들며 국내 마지막 평가전을 마무리했다.
김영욱 데플림픽축구대표팀 감독(용인대 코치)
일반고를 상대로 승리하다 안산 유스에게 일격을 당한 대표팀의 어깨가 처졌다. 속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감독은 "고개 숙이지마. 골은 먹을 수 있어. 3골 먹으면, 4골 넣고, 4골 먹으면 5골 넣으면 돼. 하지만 절대 포기하면 안돼"라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남은 시간 잘 준비해서 30일 첫 경기, 우크라이나전 잘 해보자!" 감독의 독려에 선수들이 외마디 함성으로 필승 결의를 다졌다.
김 감독은 보약이 될 '대패'를 반겼다. "우크라이나전을 앞두고 좋은 훈련이 됐다. 오늘처럼 강하고 빠른 상대와 붙어본 적이 없다. 마지막 평가전으로 최고의 경기였다. 프로 산하 선수들과 뛰어본 것도 처음이다. 잊지 못할 경험이다. 안산 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죽음의 조'라지만 우리 목표는 2승1무다. 매경기 최선을 다해 이기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배승현 안산 U-18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100% 경기력을 강조했다. '느슨하게 하는 건 이 팀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이 팀이 제대로 훈련하고 갈 수 있도록 더 강하게 붙어라. 스포츠맨십을 보여달라'고 주문했었다"고 귀띔했다. 안산서 11년간 다문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온 배 감독은 "어려운 환경 속에 축구 열정을 불태우는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오늘 경기는 우리 어린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이고 배움"이라고 했다. "체력적인 부분, 세밀한 부분만 보완하면 데플림픽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며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청각장애인선수들과 처음 발을 맞춘 '안산 10번' 김응열 역시 "리그 경기와 똑같이 뛰었다. 그래야 대표팀도, 우리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털어놨다. "생갭다 훨씬 잘하시더라. 데플림픽에서 성적을 낼 것같다. 좋은 결과를 응원한다"며 진심을 전했다.
데플림픽축구대표팀 11번 에이스 김종훈 선수
데플림픽대표팀 엔트리 21명 중 12명은 직장인이다. '밥벌이'인 생계와 좋아하는 축구를 치열하게 병행해온 이들이다. 김 감독은 "우리 팀엔 과수원 하는 친구도 있고, 환경미화원도 있다. 2004년생 막내 골키퍼 김태림은 은행고에 재학중인 고등학생"이라며 웃었다. K3 주전급 실력자도 즐비하다. '10번' 정준영은 이천시민축구단 출신, '11번' 1997년생 김종훈(전주매그풋살클럽)은 '바르샤 유스' 이승우(수원FC)와 동갑내기로 함께 '차범근축구상'을 받았던 재능이다. 5년 전 삼순 대회 브라질전에서 멀티골을 꽂아넣었던 김종훈은 "매경기 승리"를 다짐했다. "국민 여러분, 데플림픽 축구대표팀 많이 응원해주시고, 많은 박수 보내주세요"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종훈의 시선이 안산 단복 차림 이제영 대리에게 머물렀다. "안산 직원분이세요?"라며 수어를 건넸다. "최건주, 제 후배예요. 안부 전해주세요" 환한 미소와 함께 '안산 영건' 최건주를 향해 에너지 충만한 수어 응원 메시지를 띄워보냈다. "최건주 파이팅! 형이 딱 보고 있어."
축구로 모든 것이 통한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봄날의 축구 청춘들, 장애, 비장애의 벽을 넘어 축구로 하나 된 그라운드 우정이 아름다웠다. 안성=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