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걱정 말고, 네가 나 괜찮다고 기사 잘 써줘. 내가 약속한 게 있는데 이대로 쓰러지겠니?"
물론 당신도 무서웠을 겁니다. 특히 어머니 걱정에 힘들어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수년간 췌장암 투병을 이어가던 어머니에게 불효자가 됐다며 안타까워하던 당신, 차마 자신의 입으로 췌장암에 걸렸다는걸 전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가족에게 당신의 투병 사실을 전하고, 다음날 팬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한 후 그제서야 무서움이 밀려온다고 하셨죠. "발표를 하긴 했는데, 이제 나도 조금씩 무서워진다. 어제, 오늘이 달라"라고 한 숨을 내쉬던 당신은 "그래도 잘할 수 있겠지"라며 애써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신은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췌장암과 싸우는 당신이 코뼈가 부러진 가운데서도 헤더로 골을 넣었던 '유비'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그 힘든 와중에도 절대 내색없이 선수들을 리드하며, 잔류까지 이끌었으니 말이죠. "잔류시키겠다는 약속은 지켰으니 마지막 약속도 지켜야지"라고 힘주어 말하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버텨내던 당신. "힘들긴 힘들다. 엄마는 이걸 어떻게 버텼는지 몰라"라며 힘들게 말하던 당신은 "힘들기도 힘든데, 집에만 있으려니까 더 힘들다. 빨리 현장에 가고 싶어"라고 의지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후 추석 즈음이었을거에요. "췌장 쪽 암이 이제 안보인대. 거의 다 나아가는 것 같아. 주치의가 자기 의사 인생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 봤대"라는 당신의 전화, 정말 기적이라는게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외 활동이 늘어나고, 조금씩 바빠지는 당신을 보면서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잊고 있었습니다. 암이라는 그 '나쁜 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다'는 당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1월 11일이었을 겁니다. 시술 전날이었죠. 당신과 한 마지막 카톡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겨내실거에요'라는 기자의 톡에 '고맙다. 시술 마치고 보자'라는 당신의 답신. 그리고 꽤 오랫동안 연락이 닿질 않았습니다. 그 사이 여러 이야기들이 들렸어요. 무서웠습니다. 확인해줄 사람은 없고, 이야기는 점점 커지고. 다행히 2월부터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습니다. '역시 유상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뜬금없는 '위독설'이 터진 후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죠. "나 안 위독해. 잘 살고 있어. 많이 좋아졌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면마비로 어눌해진 목소리였지만, 메시지는 명확했기에 이겨내실거라고 확신했습니다.
4월부터 다시금 연락이 되질 않았습니다. 지인으로부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고, 뇌압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쇼크가 오는 상황도 늘어나고 있다고. 지금껏 잘 싸워온 모습을 지켜봤기에, 이번에도 이겨내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감독님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유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2021년 6월7일, '유상철 전 인천 감독, 췌장암 투병 끝에 사망', 당신의 투병 소식을 가장 먼저 써왔던 기자는 당신의 마지막 사망 소식까지 제일 빨리 쓰고 말았습니다. 감독님과의 수많았던 추억들이 주마등 처럼 머리 속을 스쳐 갑니다.
생전 당신은 감독으로 꿈꿔온 날개를 모두 펴지 못했던 것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잔류시키고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 '다음 시즌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대전에서도, 전남에서도 내 축구를 못해봤는데. 정말 잘할 자신 있어. 혹시 알아? 내가 잘하면 언젠가 대표팀 감독도 해보고, 다시 (이)강인이를 지도할지. 아오, 하필 이때 췌장암이 와가지고."
유상철 감독님, 부디 그곳에선 당신이 원하는 축구를 꼭 펼치시길 바랄게요. 한-일월드컵 4강 영웅 '유비'로 우리에게 안겨줬던 기쁨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아프지 말고, 편히 잠드소서.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재테크 잘하려면? 무료로 보는 금전 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