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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헹가래를 두 번이나 받았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느낌이 너무 편안하고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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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같은 ACL 우승 직후 "리그 우승과 ACL 우승을 바꾸라면 바꾸시겠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거침없는 김 대표가 처음으로 망설였다. "아…. 정말 그건 선택을 못하겠다. 사실 둘 다 하고 싶었다."
이란리그 4연패를 달린 페르세폴리스가 2018년, 2020년 잇달아 결승에 오르고도 단 한번도 거머쥐지 못한 ACL 트로피 아닌가. 누가 봐도 ACL 우승은 리그 우승보다 큰 꿈이고 상금도, 가치도 어마어마하다. 지난 2년간 울산에게 리그 우승의 꿈은 그렇게 간절했다.
2017년 FA컵 우승 이후 3년만의 우승 헹가래 직후 곧바로 재택근무에 돌입, 21일 자가격리 1일차를 마친 '갓광국' 김광국 울산 대표의 진심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축하드린다. 유난히 힘들었던 올 시즌, ACL우승 순간 울컥하셨을 것같다. 헹가래 받으실 때 기분은?
우승 순간을 상상할 때마다 너무 울컥했었는데 막상 그 자리에선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셰이크 살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 인사하고 축하받느라 울컥할 틈도 없었다. 시상식장으로 걸어가는데 보이는 풍경들이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라. 호텔에서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헹가래 좀 쳐줘, 헹가래 받고 싶다"고 했더니 헹가래를 시상식 전후로 두 번이나 쳐주더라. 하늘로 번쩍번쩍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선수들을 믿으니 헹가래가 편안했다. 행복하고 너무 좋더라. 짧은 공중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우리 젊은 선수들이 카타르에서 답답하고 단순한 호텔 생활을 너무도 훌륭하게 즐겁게 잘 이겨냈다. 3일마다 경기를 하면서 승전고를 울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즐거운 상승기류를 탔다. 풀전력으로 다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으로 작용했다.
-울산 선수들이 카타르행 비행기에 오를 때 분위기는 정말 최악이었다. 2회의 준우승과 코로나 악재까지 겹쳤다. 대표선수들 카타르로 보낼 때, 대표님은 유일하게 '결승'을 말씀하신 분이다.
물론이다. 결승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프로답게 끝까지 100% 최선을 다해야한다. 조별리그만 끝나고 들어온단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우리가 결승에 못갈 거라 예상되더라도 출전한 이상 우리는 결승을 대비해야 한다.
-울산은 오스트리아 원정을 갔던 대표선수들을 유일하게 카타르로 불러들인 팀이다. 다른 팀들과 다른 선택을 했는데, 그 선택이 결과론적으론 100% 전력으로 우승에 도움이 됐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혹시나 걸리지 않을까. 두려움으로 선수단이 경직됐다. 많은 분들이 반대할 때 그 선택을 했는데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행운아다. 그 선택이 옳았다고도, 우려를 표한 사람이 잘못됐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확진자가 나왔다면 함께 들어올 수도 없고 팀 분위기는 나락이었을 것이다. 위험을 감수한 것인데 운이 좋았다. 때로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거기서 감수해야할 위험이 무엇일까를 꼼꼼히 따져봤다. 최악일 때는 확진자 발생이지만 여러 가지 따져봤을 때 우리가 정상적으로 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최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은 충분히 감수한다는 생각이다. 덕분에 두루두루 로테이션 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ACL 현장에서 고비가 있었다면?
빗셀 고베와의 4강전. 승부차기 접전을 치르고 온 고베를 상대로 힘든 경기를 했다. 리그 마지막 순간에 꺾이면서 우승을 놓쳤던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불안했는데 결국 우리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불살라서 우승까지 해냈다. 승리하면서 안도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페레스폴리스와의 결승을 앞둔 일주일도 힘들었다. 이거 만만치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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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가 떠날 때 우승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끼린 은근히 속으로 준우승 전문인데 결승까진 가겠지. '자학 개그'도 있었다. ACL 준우승은 대단하다. 4강만 해도 잘했다고 한다. 준우승만 해도 200만 달러 상금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승을 해야 하는 팀이었다. 막상 결승에 올라가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기서 또 준우승하면 심한 흉터가 남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또 2위를 한다면 심각한 타격이 올 것같았다. 내년 시즌 준비하면서 꼭 우승해야 된다는 느낌이 확 왔다. 선수들에게 "헹가래 받고 싶다"고 말했다.
-올 시즌 울산의 '영끌 영입'이 결국 마지막에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좋은 평가는 감사하지만 절대 환상을 가지면 안된다. 'K리그가 강하다' '울산이 아시아를 제패했다'는 결과는 나왔지만 우리가 J리그과 중국 슈퍼리그를 실력으로 완전히 제압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코로나라는 비상 사태에서 다들 부분적 전력 손실을 안고 왔고, 상대적으로 우리는 코로나에 전력을 뺏기지 않았다. 서아시아팀은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우리가 선수 투자를 아시아에서 최고로 잘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운이 좋았다.
-올해 리그에서 준우승 2번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구단도 팬들도 리그 우승이 정말 간절했다. 리그 우승과 ACL 우승을 바꾸라면 바꾸겠나.
아…. 선택을 못하겠다. 사실 둘 다 하고 싶었다. ACL 우승은 파급력이 너무 크고, 꿈꾼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감히 꿈꾸지 못했다. 리그 우승은 할 수 있다 생각했다. 매년 12팀 중에 한 팀이 우승하고 우승 싸움은 2~3팀이 하는 것이니까. 현실적 목표로 삼았다. 리그 우승은 37년동안 두 번밖에 못해 갈증이 심한데 ACL 우승은 2012년에 한번 경험하기도 했고, 손에 잡히는 게 아니다 보니… 내년엔 리그 우승도 꼭 하고 싶다. 올해 리그 우승 목표는 달성 못했지만 ACL 우승했으니 목표는 초과달성한 것이다. 전교 1등을 한번도 못하다가 수능에서 전국 수석한 셈 아닌가. 아시아를 평정한 팀으로서 전북처럼 '트레블(리그+FA컵+ACL 우승)' 이야기를 해도 '웃기지 마' 할 사람은 없을 것같다.(웃음)
-FA컵 준우승 직후 ACL에서 끝까지 김도훈 감독과 동행한 것이 해피엔딩을 일궜다.
파이널라운드 대구전 무승부 후 올해도 리그 우승이 힘들 수 있을 거라 예감했다. 2주간 대표팀 휴식기 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ACL까지 이 팀을 맡아 끝까지 해줄 사람이 누가 있나. 대안은 없었다. 이 팀은 김 감독의 팀이고 김도훈 외의 대안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밖에선 믿음, 신뢰라 말하지만 어쩌면 나는 힘든 상황에서 '중간에 가는 게 어딨어?'라며 끝까지 복무하라고 잔인한 짐을 지워준 나쁜 단장일 수도 있다. 만약 김 감독이 중간에 떠났다면 절대 이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팀이 다 깨졌을 것이다. 내 눈에 지난 4년간 김도훈 감독이 해온 것은 대부분 훌륭했다. 리그 우승 결과를 못낸 것뿐이다. 퍼포먼스는 좋았고, 플러스 알파까지 기대했는데 그것이 아쉬웠다는 판단이다. 김도훈 감독을 대체할 수 있는사람은 없었다. 김도훈 감독의 팀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마무리해야 했다.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게 돼 행복하다. 다음 커리어에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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