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와이드 인터뷰]'화려한 부활' 김봉길 감독 "중국에서도 '봉길매직'이라 하더라"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20-12-04 05:40


사진캡처=산시 창안 홈페이지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중국에서도 '봉길매직'이라고 하더라고요."

휴대폰 너머 들리는 김봉길 감독(54)의 사람 좋은 목소리는 여전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중국 도전에 나섰다. 중국 갑급리그(2부리그)에서도 최하위권이었던 산시 창안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락세를 타던 김 감독의 행보를 주목한 이는 없었다. 잔류만 하면 성공이라고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김 감독의 입지는 180도 바뀌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중국 축구계가 주목하는 지도자가 됐다. 벌써부터 빅클럽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도전 의지를 숨기지 않은 김 감독은 산시와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지난달 말 자가격리에 들어간 김 감독은 모처럼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 감독은 "해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환경도 낯선데, 코로나19로 인해 일정도 바뀌고, 그로 인해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시즌이 끝난 뒤에도 거취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눕기만 하면 잔다. 자가격리가 힘들다던데 나는 피로를 제대로 풀고 있다"고 웃었다.

갑작스러운 중국행이었다.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실패를 맛본 김 감독은 이후 경기대에서 감독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예상치 못한 러브콜이 왔다. 김 감독은 "산시에서 한국인 감독을 찾는다고 해서 누가 나를 추천한 모양이더라. 사실 그 전부터 중국 이야기도 있었고,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현실이 될지는 몰랐다"고 했다. 면접 차 산시로 넘어갔는데, 갑자기 결정이 났다. 김 감독은 "점심 때 구단주와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면담을 했다. 이런 팀을 만들겠다고 나름 설명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밤에 연락이 왔다. 구단주가 나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졌다고 하더라. 귀국편을 늦추라고 했고, 바로 다음 날 계약하고 가라고 하더라. 그렇게 산시행이 결정이 났다"고 했다.


사진제공=김봉길 감독
시진핑 주석의 고향으로 유명한 산시는, 축구계에서는 그렇게 알아주는 곳이 아니었다. 옌벤이 해체되며, 지난 시즌 갑작스레 3부에서 2부로 올라왔다. 재정적으로 아직 2부에서 버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리그가 연기되며 스폰서들도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3월에는 지난 시즌 22골을 넣으며 갑급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오스카가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팀 전력의 절반이 넘는다는 평가를 받은 오스카였다. 김 감독은 "구단이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잔류만 해주면 된다고 하더라. 막막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하나씩 새롭게 팀을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3부에서 뛰던 선수들인 만큼 수준이 높지 않았다. 과거 광저우 헝다와 대표팀에서 뛰었던 '주장' 양하오가 이 팀의 최고 스타였다. 김 감독은 오히려 선수들의 긍정적인 부분을 봤다. 그는 "선수들이 '때가 묻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였다. 팀워크도 좋았다. 한국식 훈련이 워낙 양도 많고, 치열해서 쫓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릴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너무 잘 따라왔다. 양하오가 이장수 감독 밑에서 있었는데, 한국방식을 아는 만큼 가교 역할을 잘했다"고 했다.

팀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는데 코로나 변수가 생겼다. 당초 3월 개막할 것이라던 리그가, 4월, 5월, 6월, 조금씩 늦어졌다. 김 감독은 "오히려 나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팀을 더 만들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다. 김 감독식 축구의 핵심은 압박이었는데, 선수들의 체력이 문제였다. 차근 차근 팀을 만들며 선수들의 체력을 바짝 끌어올렸다. 중국 내 전지훈련을 오가며 선수들의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했고, 이 부분이 주효했다. 한편으로는 이 시간이 김 감독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기도 했다. 김 감독은 "중국으로 가며 각오를 남다르게 하기는 했지만, 한국도 못돌아오고, 이동도 자유롭지 않다보니 쉽지 않았다. 가족들이 중국의 코로나 상황이 심하다고 하니까 걱정도 많았고,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사진제공=김봉길 감독
고진감래라 했던가. 김 감독의 고생은 결실을 맺었다. 마침내 9월 리그 재개 사인이 떨어지고 시작된 1차 리그에서 3위에 올랐다. 인천 시절 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강력한 압박, 빠른 공격전개가 제대로 통했다. 김 감독은 "1차 리그 끝나고 경기 내용은 가장 좋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2차 리그를 앞두고 미디어데이 비슷한걸 하는데 각 팀 감독들이 '경기력만 보면 산시가 최고'라고 했다"고 했다. 2차 리그에서는 한단계 높은 2위에 올랐다. 매경기 신들린 용병술에, 현지에서도 '봉길매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1, 2차 합계 5승6무4패를 기록한 산시는 18개 팀 중 최종 9위에 올랐다. 당초 목표로 한 잔류를 넘는,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다.


경기력부터 결과까지 거머쥔 김 감독을 향해 러브콜이 이어졌다. 2부 리그 4팀이 치열한 영입전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슈퍼리그(1부리그)팀들도 관심을 보내고 있다. 김 감독은 "산시와 계약기간이 남았었다. 구단주도 나와 더 가고 싶지만, 팀 사정을 이야기 하더라. 마침 다른 팀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어 계약을 해지 했다. 도전을 더 이어가고 싶은 생각도 컸다"고 했다. 김 감독과의 이별에, 구단 관계자도, 산시 팬들도 아쉬워했다. 김 감독은 "팀이 더 커지면 다시 만나자고 하더라. 매 훈련마다 나와서 지켜보던 팬들도 아쉬워 하셨다. 모두 다 인사를 하고 나오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결과적으로 중국행은 내 지도자 인생에서 신의 한수가 됐다"고 했다. 김 감독은 23세 이하 대표팀 실패 후 '김봉길은 끝났다'는 평가를 바꾸고 싶었다. 그는 "사실 자랑도 하고 싶었다. 김봉길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기회만 주어지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늘 있었다. 준비도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기회가 왔고, 결과를 잡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격리 후 다시 중국으로 갈 예정이다. 팀이 정해지면 사인하고, 바로 또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번에도 쉽지 않은 도전이 예고되고 있지만, 김 감독은 벌써부터 들뜬 모습이었다. 김 감독은 "새로운 도전이 나를 깨웠다. 이제 다른 도전이 시작되는 만큼 이번에도 맞서서 이겨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틱톡-청룡영화상 투표 바로가기

2021 신축년(辛丑年) 신년 운세 보러가기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