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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다. 스스로 짐을 싸서 나갔다."
김호영 감독대행이 24일 돌연 사퇴했다. FC서울 구단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호영 감독대행이 자진 사임하였습니다. FC서울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차기 감독 선임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김호영 감독대행은 지난 8월 1일 14라운드 성남전부터 감독대행직을 수행하며 9경기 4승3무2패의 성적을 거뒀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김 대행은 지난 7월 말 최용수 감독이 사퇴한 이후 수석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선임돼 지휘봉을 잡아왔다. 최 감독이 떠난 지 2개월도 안돼 사령탑이 바뀌는 난맥상을 보인 것이다.
갑작스러운 김 대행의 사임에 서울 선수단은 또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것도 수원 삼성과의 '슈퍼매치', 파이널B 첫 경기를 코 앞에 두고서다. 겉으로 보면 김 대행이 무책임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구단의 간단한 발표와 달리 김 대행이 전격 사임하게 된 배경은 복잡 미묘하다. 최 감독 사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현장 사령탑이 책임을 떠안았고 구단은 또 뒤에 숨었다.
김 대행은 구단을 떠나기 전 구단 측과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구단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임시로 지휘봉을 잡은 김 대행의 임기, 시즌 종료가 다가오는데 반해 구단 측이 그의 거취에 대해 별다른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 김 대행 입장에서도 자신의 거취가 불투명해진 이상 하고 싶은 의지가 떨어졌을 것"이라며 "'싫으면 떠나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니 갑자기 짐을 싸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 감독 사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구단이 김 대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도록 내몰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대행 부임 이후 서울이 이른바 '프런트 축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선수단, 축구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김 대행 부임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구단 수뇌부가 어린 선수를 중용하도록 간섭하고, 김 대행이 이를 수용하면서 이전보다 성적이 좋아지기는 했다.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구단 측이 김 대행을 추켜세우고 회식도 하면서 전에 없던 구단-코칭스태프간 화합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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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홍도 있었다. 주세종 고요한 박주영 등 고참급 선수들을 상대적으로 소외하면서 팀 분위기는 미묘하게 돌아갔다. 여기에 어린 선수 중심 전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지난 16일 인천과의 21라운드(0대1 패)다. 당시 서울이 예상을 뒤엎고 최하위 인천에 일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룹B로 내려가지 않았다. 이 때 대다수 축구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패착'이 있었다.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후반 19분 기성용을 교체하면서 박주영을 벤치에 그대로 두는 대신 정한민을 투입했다. 어린 선수 정한민이 김 대행 부임 이후 기회를 얻어 좋은 활약을 펼쳤다지만 1골 승부에, 마지막 교체카드의 중대한 상황에서 해결사 박주영을 버렸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이에 대해 한 축구인은 "'프런트 축구'에 눈치를 보고, 구단 수뇌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을 의식하다 보니 이런 용병술이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김 대행은 팀 분위기와 선수별 컨디션을 고려해 고참 선수들을 기용했다가 구단 측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는 증언도 흘러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구단이 후임 감독 '리스트업'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니 김 대행으로서도 힘이 빠질 만하다.
서울 구단은 김 대행이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불과 몇 시간 만인 오후 3시50분쯤 '사임'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최 감독 사임 때도 사퇴 의사를 밝힌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퇴를 발표했다. 결국 김 대행은 구단과 선수단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서울 구단은 또다른 '흑역사'를 남겼다. 엄태진 사장이 부임한 첫 시즌인 2018년 '황선홍-이을용-최용수 감독으로 시즌 중 감독 교체+그룹B 추락'에 이어 2년 만에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번에도 책임은 감독 등 코칭스태프가 모두 떠안았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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