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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손흥민(26·토트넘)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는 주장 기성용(29)의 부재를 완벽하게 대신했다. 3패를 당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손흥민을 중심으로 23명의 태극전사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다같이 한마음이 되자. 국민들에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걸 쏟자"고 독려했다. 손흥민을 필두로 우리나라 대표 선수 14명은 총 118㎞라는 많은 움직임으로 디펜딩 챔피언 전차군단 독일을 무너트리며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제 '캡틴 손흥민'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성용에서 손흥민으로 '권력 이동'이 될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에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던 손흥민은 알제리전(2대4 패)에서 월드컵 본선 첫 골을 넣었다. 러시아전(1대1 무)과 벨기에전(0대1 패)에도 선발 출전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 러시아전 전반 좋은 슈팅 찬스를 잡았지만 긴장한 탓에 슈팅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1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16강 실패 후 펑펑 울던 그에게 '울보'라는 별명이 처음으로 붙었다.
그는 "나는 브라질월드컵 때보다 나이를 좀더 먹었다. 4년 전은 후배 황희찬 같은 생각으로 월드컵에 나갔다. 자신감 넘쳤고 다 이길 것 같았다. 철이 없었다. 월드컵은 기대가 되지만 또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춘천에서 태어나 축구를 시작했지만 K리그를 거치지 않았다. 그가 프로의 맛을 본 곳은 독일 분데스리가다. 함부르크 구단이 어린 손흥민의 빠른 발에 반해 영입했다. 독일어를 가르쳤고, 분데스리가에 적응하도록 해줬다. 손흥민도 그런 구단의 기대에 매우 빠르게 부응했다. 빨리 2부 생활을 마감한 손흥민은 세시즌 만에 1부리그서 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처음 경험했다. 그의 빠른 성장과 적응력에 놀랐다. 2013년 여름 레버쿠젠(독일)이 이적료 1000만유로를 함부르크에 지불하고 손흥민을 영입했다. 레버쿠젠에서 EPL 토트넘으로 이적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레버쿠젠에서 두 시즌 연속 10골 이상을 꾸준히 때려넣었다. 토트넘은 레버쿠젠에 2500만유로를 주고 손흥민을 모셔왔다. 레버쿠젠은 손흥민을 통해 2년 만에 1500만유로를 남겼다.
이렇게 손흥민 개인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세계적인 공격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만 오면 손흥민은 기가 죽고 울보가 되었다. 그라운드에서 그는 외롭고 힘겹게 싸울 때가 많다. 그와 호흡을 맞춰줄 수준의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곤 권창훈 염기훈 이근호 등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판 독일전에서 부상으로 결장한 기성용의 주장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손흥민은 기성용이 없을 때마다 주장을 대신했고 팀이 승리했다. 지난달 온두라스와의 평가전(2대0) 때도 주장 손흥민은 결승골로 승리를 견인했다.
손흥민은 4년 후 카타르월드컵을 기약하고 있다. 그는 "이번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4년 후, 8년 뒤에도 발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4년의 세월이 흐르면 손흥민은 더 완숙해질 것이다. 게다가 독일전 승리의 기억은 그 어떤 상대도 무너트릴 수 있다는 큰 자신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카잔(러시아)=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