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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고등학생! UCL VIP석에 서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8-06-05 07:41


UCL 결승을 VIP석에서 관전한 강상훈씨와 강명훈씨 부자가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강명훈씨

[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유럽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 직관(직접 관람의 줄임말). 축구팬이라면 한 번쯤 꿈꿔본 버킷리스트 1순위이다. 만약 VIP석에서 그 경기를 본다면? 그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최근 이렇게 많은 축구팬들의 꿈을 이룬 한국 팬들이 있었다. 3명의 한국 축구팬들이 지난달 우크라이나 키예프 올림피스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레알 마드리드 3대1 승리)을 VIP석에서 관람하고 돌아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고3, 키예프로 향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웃음지었다. 리버풀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키예프로 왔다.

아들 강명훈(24, 대학생)씨는 꾸준히 돈을 모았다. 아버지 강상훈(47, 회사원)씨와 함께 리버풀이 UCL결승전에 올라갈 날을 위해서였다. 아르바이트와 인턴십 등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았다. 언제가 될 지는 몰랐다. 그래도 그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중 리버풀이 사고를 쳤다. AS로마를 제치고 결승전에 올랐다. 명훈씨는 바빠졌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명훈씨에게 아버지는 '축구 동지'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여덟살이던 명훈씨는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월드컵 재방송을 보며 웃는 모습을 봤다. 비몽사몽이었던 명훈씨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월드컵을 보면서 축구를 알아갔다. 이후 학교에서 축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알고보니 아버지도 학생 시절 몸담았던 동아리였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축구를 매개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 꿈이 하나 생겼어요. 중학교 시절부터 리버풀을 좋아했는데요. 그 리버풀 경기를 아버지와 함께 보겠다는 꿈이었어요. 그것도 다른 경기들이 아닌 리버풀이 나가는 UCL 결승으로 잡았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올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덜컥 그 시기가 다가와버리고 말았어요. 올 시즌 리버풀이 UCL 결승에 진출한 것이죠."


강명훈씨와 윤석민군. 사진제공=강명훈씨
그동안 모은 돈을 확인했다. 두 사람이 비행기는 탈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티켓 가격이었다. 천정부지였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경기장 앞에서 암표를 사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거짓말처럼 기적이 찾아왔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카탈리나 앤 파트너스가 2018년 UCL 결승전 초청 이벤트를 마련한 것. 자신이 키예프로 가야하는 이유를 써서 보내면 2명을 선정해 결승전 VIP티켓과 현지 호텔 1박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었다. 명훈씨는 자신과 아버지의 사연을 써서 보냈다 .


카탈리나 앤 파트너스는 이들 부자를 초청하기로 했다. 원래는 아들만 초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연을 읽은 뒤 한 자리를 더 구해 아버지까지 초청하기로 했다.

갑자기 찾아온 기적에 부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날로 비행기 티켓을 구했다. 카자흐스탄을 거쳐 오는 긴 여정이었다. 결승전 당일 키예프에 도착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아들은 전혀 피곤해하지 않았다.

"아들 덕분에 큰 호강을 누리게 됐어요.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아버지는 큰 웃음을 지었다

이들 부자와 함께 고3인 윤석민군도 키예프에 왔다. 윤 군 역시 리버풀의 광팬이었다. 윤 군의 부모님들 역시 좋은 기회라며 아들의 키예프행을 허락했다. 윤 군은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울께요"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강명훈씨
VIP석 또 다른 세상

명훈씨와 상훈씨 그리고 윤 군이 초청받은 VIP석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 도착하면 전용 의전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UEFA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처음에 공항에 도착해 UEFA 부스로 갔어요. 저랑 아버지가 모두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관계자는 귀찮아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명단조차 확인하지 않으려고 하던데요. 계속 명단을 확인해보라고 해서 마지못해 하더라고요. 저희 이름이 있으니 그제서야 놀라면서 사과를 하더군요. 이후에는 친절하게 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했어요."

경기장에서의 의전도 남달랐다. 각 숙소에서부터 경기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경기장 주변이 대부분 교통 통제 상황임에도 VIP가 탄 차량은 무사 통과였다. 드레스코드도 있었다. 정장이었다. 3명의 한국팬들도 정장을 입었다.

VIP구역은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구역과 경기를 볼 수 있는 좌석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테이블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초청된 인물들의 이름이 찍혀있었다. 뷔페식이었다. 식사를 하는 중 무대에서는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흥겹게 했다.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명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이번 경기를 예상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라고 명훈씨가 감탄하기도 했다.

경기 좌석은 1층 중립지대에 있었다. 선수들의 표정까지 모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VIP석의 특성상 팬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았다. 그래도 각자의 응원가가 나올 때마다 서로 뜨겁게 응원하고 열렬하게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타팀에 대한 비난과 같은 소리보다 각자 팀을 힘차게 응원하고 바로 옆에 상대 팀 팬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를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끝났다. 3명의 한국 팬들 모두 리버풀을 응원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벅찬 감동을 받았다.

명훈씨는 "아버지와 함께 이런 경기를 VIP석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아버지께 지금껏 하지 못한 효도를 조금이나마 한 것 같아 너무 뿌듯했습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카탈리나앤파트너스 관계자분들께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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