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난 놈'이다." 신태용 한국 축구 A대표팀 감독(48)은 지난 2010년 프로팀(성남 일화) 지휘봉을 잡은 지 단 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섰을 때 이렇게 외쳤다.
스스로 "운이 좋다"라는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성남 시절, 각급 대표팀에서도 기량이 좋은 선수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운장설'이 있다. 이에 대해 신 감독은 당당했다. "'신태용은 운이 좋은 놈'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운도 준비된 자만이 가질 수 있다. 아무리 내가 운이 좋다고 하지만 준비하지 않고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 기다리기만 하는 요행만 바라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준비하면 운도, 좋은 결과도 따를 것이다."
'난 놈'의 '운'이 86일(3월 20일 기준) 앞으로 다가온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스포츠조선은 최근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가진 신 감독과의 창간 28주년 인터뷰에서 지난 8개월간 A대표팀을 이끈 소회와 월드컵 본선에서의 자신감을 들을 수 있었다.
|
지난해 7월 4일, 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소방수로 투입됐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빨간불을 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뒤 A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사실 신 감독에게는 협회의 제안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80분 뿐이었다. 남은 두 경기에서 변화를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렇다고 A대표팀 감독이 된 이상 변명은 있을 수 없었다. 월드컵 진출 좌절은 자신의 지도자 인생을 회생시키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큰 부담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어려운 미션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심지어 '히딩크 모시기'란 엉뚱한 이슈 속에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에 대한 성과가 묻혀버렸다. 신 감독은 "(지난 8개월간) 롤러코스터를 탔다. 사실 A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아도 됐다. 내 축구인생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도전을 했고 월드컵에 진출했다. 스스로 '잘했다. 고생했다'는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문에 휩싸였을 때 서운하기도 했다. '이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나는 할 수 있다"X2, "우리는 할 수 있다"
신 감독은 10년 전 성남을 이끌던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구호가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다." 신 감독은 이 구호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면서 다사다난했던 8개월을 버텼다. 그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선수들이 뭉치면 어느 팀도 두렵지 않다. 나무 젓가락 한 개를 세우기는 힘들지만 다발은 세우기 쉽듯이 말이다.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도 '나는 한국을 월드컵에 진출시킨 감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냈다"고 말했다.
|
|
러시아월드컵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실험을 마친 신 감독은 월드컵 본선 엔트리(23명)의 80~90%를 확정지었다. 신 감독은 "담담하다. 스타일상 미리 걱정하는 편은 아니다. 월드컵이 다가온다고 해서 긴장하지 않는다. 북아일랜드전(3월 24일)과 폴란드전(3월 28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웃었다.
로드맵대로 잘 걸어가고 있다. 신 감독은 "꾸준하게 잘 만들어지고 있다. 전혀 부족함과 불편함이 없다. 전력분석도 잘 움직여준다. 가르시아 에르난데스 전력분석관이 3월 유럽 평가전부터 합류하기로 했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5년간 한 분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분석관도 했었다. 토니 그란데 코치와도 잘 안다. 토니와 비슷한 연배라 컴퓨터를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전력분석에선 대가로 통한다. 그래서 컴퓨터를 다룰 사람은 따로 둘 것"이라고 했다.
시뮬레이션과 스웨덴전 필승
신 감독은 5월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 계획 대로라면 3월 유럽 평가전 명단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을 전망이다. 그만의 선수 발탁 기준은 확실했다. 신 감독은 "물음표는 컨디션 저하나 부상이 없으면 어느 정도 내 머리 안에는 구성이 돼 있다. 크게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며 "생각 외로 합류해서 뭔가 보여주는 시너지를 생각하고 있다. 몇몇 선수가 바뀔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K리그와 아시아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31팀을 상대한다. 경쟁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K리그에서 경기를 못하더라도 저 팀과 경쟁력이 있으면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우리는 벌써부터 스웨덴전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하듯이 선수 기용과 포메이션을 수도 없이 돌려보고 가장 강한 라인업을 꾸린다. 감독이란 자리가 그렇게 쉽지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6월 18일, 신태용호는 러시아월드컵 본선 첫 상대 스웨덴과 충돌한다. 첫 단추를 잘 꿰야 원정 16강이 보인다. 신 감독은 "첫 경기 결과가 좋으면 두 번째 멕시코전(6월 24일)도 잘 될 것이다. 첫 경기를 잡으면 예선 통과는 가능하다. 세번째 상대 독일(6월 24일)에 대한 전력분석은 많이 안 하고 있다. 현장에서 1~2차전을 보기 때문이다. 그 때가서 보는 것이 낫다. 요하임 뢰브 감독은 워낙 선수층이 두터워 여러 선수들을 기용하기 때문에 지금은 혼란스럽다"고 했다. 한국은 이번 러시아월드컵 본선서 스웨덴 멕시코 독일과 F조에 속해 있다.
|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기점으로 A대표팀 주축은 손흥민(26·토트넘)이 됐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월드클래스급이다. 지난 시즌 47경기에서 21골을 터뜨렸다. 올 시즌도 44경기에서 18골을 기록 중이다. 최근에는 4경기에서 7골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신 감독은 "너무 잘나가서 불안하다"면서 농을 던진 뒤 "중요한 역할이다. 지난해 최종예선 때보다 훨씬 넓어졌다. 특히 인성이 달라졌다. 대표팀 내에서도 그렇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10차전 끝나고 그 다음 10월 콜롬비아전과 세르비아전 때 변해서 왔다. 선배 기성용과 방을 같이 쓰더라. 깜짝 놀랐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도 손흥민을 인정하더라"고 전했다. 성남=노주환, 김진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