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성원의 센터서클]홍명보 전무 시대, 첫 단추는 신뢰회복이 돼야 한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7-11-09 08:54



먼 길을 돌아왔다.

2004년 현역 은퇴 후 홍명보가 꿈꾼 길은 행정가였다. 하지만 2005년 뜻하지 않게 운명이 엇갈렸다. 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을 지휘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코치직을 제의했고, 수차례 고사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지도자가 그렇듯 그 또한 롤러코스터를 탔다. 2009년 사령탑으로 첫 발을 내디딘 감독 홍명보는 승승장구했다. 그 해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에서 18년 만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선물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아픔이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처음으로 쓴 맛을 봤다. 2016년 '가난한 구단'인 중국의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문화적인 차이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환희와 좌절이 교차했던 12년 지도자 세월을 뒤로 하고 운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현장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 첫 걸음을 옮긴다. 8일 단행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인적 쇄신. 그 중심에 바로 홍명보가 있다. 위치가 달라졌다. 더 이상 감독이 아니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처음 품었던 꿈인 행정가의 길이 열렸다.

박수 받지 못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이어진 A대표팀의 부진, 히딩크 논란 등으로 대한축구협회는 벼랑 끝 혼수상태였다. 어떻게든 소생시켜야 하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상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만큼은 달랐다.

홍 전무의 발탁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사하는 바도 큰 인사다. 축구협회 전무는 '얼굴 마담'이 아니다. 모든 행정을 총괄하는 핵심 포스트다. 축구 행정가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자리를 48세인 홍 전무가 꿰찬 것은 세대 교체의 신호탄이자 변화의 새 물결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기대도 크다. 홍 감독은 성격상 '예스맨'과는 거리가 멀다. 할 말을 하면서도, 귀도 열려 있다. 20년 가까이 장학재단을 이끈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알다시피 그저 그런 장학재단이 아니다. 자선경기를 통해 사회에 기부한 금액만 해도 20억 원이 넘는다. 장학생 선발, 대형 수비수 육성 프로젝트 등도 매년 빼놓지 않고 있다.


현역 시절 홍 감독은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었다. 연령대별 대표를 거치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이 돼서야 꿈꾸던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햇수로 13년간 대한민국을 위해 뛰었다.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월드컵,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극적인 반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4강 신화로 그의 국가대표 인생은 찬란하게 막을 내렸다. 지도자에 이은 행정가는 '홍명보 축구인생의 제3막'이다.

홍 전무 체제는 16일 축구협회 총회를 거쳐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10일 콜롬비아, 14일 세르비아와의 평가전 이후 닻을 올린다.

물론 현실이 녹록지 만은 않다. 한국 축구는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팬들은 등을 돌렸고, 저주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모두가 대한축구협회의 변화를 바라고 있다.

이제 그 키를 홍 전무가 쥐고 있다. 적극적인 쇄신을 통한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말이 아닌 행동이 선행돼야 눈 앞에 닥친 험난한 파고를 넘을 수 있다.

'행정가'로 변신한 홍 전무의 새로운 도전이 한국 축구에 비타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바일 팀장 newsme@sportschosun.com

KBL 450%+NBA 320%+배구290%, 마토토 필살픽 적중 신화는 계속된다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