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동국 놔주자는 신태용, 그 의미는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7-10-30 21:21


◇이동국이 지난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뒤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면서 당시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던 신태용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부천=정재근 기자cjg@sportschosun.com

묘한 시점에서의 엇갈림이다.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38·전북 현대). 그가 K리그 최고의 순간, 20년 대표팀 은퇴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동국은 올 시즌 한국 축구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역사의 순간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전인미답의 개인통산 200호 골이었던 쐐기포로 소속팀에 통산 5번째 우승을 선사했다. 20년 동안 꾸준히 그라운드를 누빈 성실함의 증표이자 녹슬지 않은 노장의 클래스였다. 그는 여전히 한국 축구 최고의 공격수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하지만 이동국의 골을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30일 발표된 11월 A매치 2연전 소집명단에 그의 이름은 빠졌다. 나아가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은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이제는 이동국을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 '대표팀 은퇴'에 대한 암시다. 본선을 7개월 앞둔 시점, 신 감독이 이동국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이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11월 A매치 2연전에 나설 소집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러시아의 신태용호, 이동국은 없다

신 감독은 지난 22일 강원FC전에 나선 이동국의 모습을 지켜봤다. 전북이 우승을 확정 지은 29일 제주전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 선 신 감독은 허심탄회하게 심경을 털어놓았다. 신 감독은 "이동국은 내가 춘천에 가서 강원전도 보고 어제 우승 때도 봤다. 골도 넣고 좋은 모습 보였다. 통산 200호 골을 넣었다. K리그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K리그의 영웅을 마지막에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만약에 이동국이 이번 2연전에서 찬스 상황을 맞이했을 때 골을 넣지 못한다면 비난의 도마에 오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동국은 내년 본선 때도 득점을 올릴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최전방에서) 뛰고 싸워주는 것까지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엔 의문이 든다"며 "이제는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 이동국을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신 감독은 지난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연전에 이동국을 발탁한 바 있다. 이동국은 당시 후반 교체 멤버로 나섰다. 당시 신 감독은 '이동국 활용법'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축구계 관계자는 "신 감독이 당시 이동국에게 향후 대표팀 발탁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건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신태용호의 구상에 이동국은 이미 빠져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동국이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전에서 K리그 클래식 우승 트로피를 들고 팬들 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전주=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핵심은 배려다


11월 A매치 2연전은 신 감독이 내년 6월 본선 준비 시작으로 공언한 출발점이다. 국내외 선수를 모두 끌어 모은 23명의 명단이 의지를 대변한다. '이동국 발언'도 이런 기조와 다르지 않다. 기량은 인정하지만 체력적인 경쟁력이 필요한 본선에서 이동국이 100% 기량을 발휘할 지에 물음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력만 놓고보면 톱클래스인 이동국을 조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이동국은 올 시즌 전북에서도 교체출전 비중이 높았다. 골 감각은 여전했지만 흐르는 세월의 무게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내부경쟁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이 시즌 내내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결국 대표팀에서도 이동국은 선발보다는 교체 임무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짧은 시간 내에 승부를 결정 지어야 하는 공격수의 중압감은 상상 이상이다. 경기 내내 언제든 그라운드에 설 수 있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 역시 지금의 이동국에게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렇게 되면 이동국은 본선에서 이운재 안정환(이상 2010년 남아공)이나 곽태휘(2014년 브라질)가 맡았던 '정신적 지주' 역할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역사를 새로 쓴 이동국의 상징성, 골잡이의 자존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 감독이 이동국에게 이런 희생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이동국 본인도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결국 신 감독의 거리두기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노장 선수를 위한 진심 어린 배려인 셈이다.


◇이동국이 지난 2010년 6월 26일(한국시각)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우루과이와의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상대 수비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포트엘리자베스(남아공)=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영욕의 월드컵, 이동국의 선택은?

이동국이 본선 무대를 밟은 것은 두 차례다. 네덜란드전 중거리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환희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게으른 선수'로 낙인찍혔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직전 무릎 부상으로 쓰러졌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절치부심 끝에 전북에서 부활 찬가를 부르고 입성한 2010년 남아공 대회도 눈물이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40세를 바라보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내년 본선은 마지막 기회다.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시점에서 명예롭게 피날레를 장식하는 꿈을 꿀 만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해보면 최상의 결과를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동국은 "내가 오래 뛰면 한국축구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최근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자신을 지목해 한국 축구 공격수 부재를 논한 부분에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제게 내년은 아직 긴 시간이다. 대표팀도 그렇다. 올해 은퇴를 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경기할 수 있는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첫 번째다. 내년 생각은 접어두고 있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바 있다.

'전설' 이동국의 대표팀 은퇴. 신 감독이 먼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공은 이동국에게 넘어갔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축구토토 승무패 적중, NBA 필살픽 다수 적중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