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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시점에서의 엇갈림이다.
하지만 이동국의 골을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30일 발표된 11월 A매치 2연전 소집명단에 그의 이름은 빠졌다. 나아가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은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이제는 이동국을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 '대표팀 은퇴'에 대한 암시다. 본선을 7개월 앞둔 시점, 신 감독이 이동국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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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감독은 지난 이란,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연전에 이동국을 발탁한 바 있다. 이동국은 당시 후반 교체 멤버로 나섰다. 당시 신 감독은 '이동국 활용법'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축구계 관계자는 "신 감독이 당시 이동국에게 향후 대표팀 발탁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건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신태용호의 구상에 이동국은 이미 빠져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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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A매치 2연전은 신 감독이 내년 6월 본선 준비 시작으로 공언한 출발점이다. 국내외 선수를 모두 끌어 모은 23명의 명단이 의지를 대변한다. '이동국 발언'도 이런 기조와 다르지 않다. 기량은 인정하지만 체력적인 경쟁력이 필요한 본선에서 이동국이 100% 기량을 발휘할 지에 물음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력만 놓고보면 톱클래스인 이동국을 조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이동국은 올 시즌 전북에서도 교체출전 비중이 높았다. 골 감각은 여전했지만 흐르는 세월의 무게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내부경쟁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이 시즌 내내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결국 대표팀에서도 이동국은 선발보다는 교체 임무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짧은 시간 내에 승부를 결정 지어야 하는 공격수의 중압감은 상상 이상이다. 경기 내내 언제든 그라운드에 설 수 있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 역시 지금의 이동국에게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렇게 되면 이동국은 본선에서 이운재 안정환(이상 2010년 남아공)이나 곽태휘(2014년 브라질)가 맡았던 '정신적 지주' 역할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역사를 새로 쓴 이동국의 상징성, 골잡이의 자존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신 감독이 이동국에게 이런 희생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이동국 본인도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결국 신 감독의 거리두기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노장 선수를 위한 진심 어린 배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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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 본선 무대를 밟은 것은 두 차례다. 네덜란드전 중거리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환희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게으른 선수'로 낙인찍혔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직전 무릎 부상으로 쓰러졌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절치부심 끝에 전북에서 부활 찬가를 부르고 입성한 2010년 남아공 대회도 눈물이었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40세를 바라보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내년 본선은 마지막 기회다.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시점에서 명예롭게 피날레를 장식하는 꿈을 꿀 만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해보면 최상의 결과를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동국은 "내가 오래 뛰면 한국축구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최근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자신을 지목해 한국 축구 공격수 부재를 논한 부분에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제게 내년은 아직 긴 시간이다. 대표팀도 그렇다. 올해 은퇴를 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경기할 수 있는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첫 번째다. 내년 생각은 접어두고 있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바 있다.
'전설' 이동국의 대표팀 은퇴. 신 감독이 먼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공은 이동국에게 넘어갔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