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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시리아, 10년 전 이라크를 추억한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7-09-07 20:56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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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한국시각) 이란전을 중계하던 시리아 캐스터의 목소리엔 힘이 빠져 있었다.

이란에게 역전골을 허용한 채 1-2로 끌려가던 시리아는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다. 빠르게 전개된 역습에서 볼은 이란 진영 아크 오른쪽에 서 있던 오마르 알 소마에게 연결됐다. 점점 커지던 캐스터의 목소리는 동점골 시점에서 '통곡'으로 바뀌었다. "골! 알라~~! 맙소사, 두 번째 골입니다! 우리 대표팀이 두 번째 골을 터뜨렸습니다! 누가 넣었지? 소마! 소마가 넣었네요! 틀림없이 소마입니다! 동점골입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흐느끼며 고해성사를 했다. "알라여, 용서해주십시오. (패배할까봐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 선수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시리아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최약체로 꼽혔다. 모두가 '승점자판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2차예선을 힘겹게 통과했으나 최종예선에서 만난 상대는 쟁쟁했다. 이점이 가득한 홈 어드밴티지도 시리아에겐 없었다. 오랜 내전으로 선수단 소집은 물론 홈경기까지 자국 대신 제3국에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시리아 선수단은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치른 최종예선 홈 5경기서 2승3무, A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누구도 예상 못한 '대반란'이다.

2007년 동남아 4개국이 공동개최한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라크를 떠올리게 하는 행보였다. 당시 전쟁의 포화를 뚫고 조별리그에 오른 이라크를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8강에서 베트남을 완파할 때만 해도 '운이 좋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4강에서 한국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자 '이변'은 '기적'으로 바뀌었다. TV 앞에 모여 4강전을 지켜보던 이라크 시민 190여명이 자살폭탄 테러에 희생됐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세계가 이라크를 응원했다. 결국 이라크 선수단은 8만8000여 관중이 모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1대0으로 꺾고 사상 첫 대회 우승을 일궜다. 매경기에 앞서 스크럼을 짜고 파이팅을 외친 뒤 자국 팬들에게 달려갔던 선수들은 눈물바다 속에 우승트로피를 치켜들었다. 이라크 골키퍼 누르 사브리는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승리"라며 흐느꼈다.

시리아는 오는 10월 B조 3위 호주와 0.5장의 본선 티켓이 걸린 홈 앤드 어웨이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아시아 최강 중 한 팀으로 꼽히는 호주가 우세하다는게 중론이다. 호주를 꺾어도 북중미-카리브해(CONCACAF) 최종예선 4위팀과의 대륙간 플레이오프가 기다리고 있다.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는 아직 머나먼 길이다. 하지만 시리아의 현재는 이미 기적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자국민에게 축구는 어두운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다. 또 하나의 '기적'을 향해 달려갈 시리아 대표팀. 또 한번 중계 캐스터가 '알라'를 외칠 수 있을까. '내전', '화학무기', '학살'로 고통받고 있는 시리아 국민들은 10년 전 이라크 대표팀의 기적과 감동의 스토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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