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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서 상대를 제압하는 건 플레이어, 즉 선수다. 감독이 코치들과 함께 밤잠을 설쳐 기묘한 전술과 전략을 수립해도 선수들이 잔디 위에서 실천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나름 신중하게, 그리고 절차를 지켜 김호곤 새 기술위원장에 이어 신태용 감독을 A대표팀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약간의 혼란스러운 상황도 있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물러나면서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밝힌 차기 감독의 기준이 적잖은 후폭풍을 낳았다. 역대 월드컵 최종예선 경험을 기준 중 하나로 꼽아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대세로 떠올랐다. 반전 드라마는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말한 '백지 상태' '소통' 등에서 출발했다.
축구협회는 최근 우리나라 축구 A대표팀이 처한 나쁜 상황의 주 원인을 '불통'에서 찾았다. 손흥민 처럼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감독의 소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출신 슈틸리케 감독이 A대표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단 슈틸리케 감독이 A대표 소집 이후 해외파와 국내 K리거들을 동등한 잣대로 소통, 평가했는 지에 대해서 축구협회 차원에서 좀더 면밀한 뒷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대표팀에 차출됐다가 복귀한 선수들과 그 주변 인물들 사이에선 차별감을 느꼈다는 비난의 소리가 적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은 현 축구협회가 위기 때마다 믿고 기용하는 단골 '소방수'다. 리우올림픽대표팀, U-20 월드컵 대표팀 등을 이끌어 아주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했다고 평가할 수도 없는 성적을 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을 도와 A대표팀을 이끈 경험도 있다. 따라서 현 A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
신태용호의 당면 과제는 한국을 내년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란전(8월31일)과 우즈베키스탄전(9월5일) 두 경기를 통해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3위 우즈베키스탄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최종 2위를 해야 골치아픈 플레이오프 없이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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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감독에겐 날짜로만 따지면 8월 31일 이란전까지 50일 정도 남았다. 그러나 대표팀을 소집해 훈련하고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K리그 일정대로라면 8월 27일 정규리그를 마치고 소집할 수 있다. 구단과 프로축구연맹이 동의를 해준다면 또 조기소집할 수도 있다. 해외파는 차출 규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조기소집이 어렵다. 손흥민과 기성용은 각각 팔과 무릎 수술로 이란전과 우즈벡전 출전이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신태용 감독이 공격 축구 스타일을 A대표팀에 이식시킬 수 있는 시간은 현재로선 3일이다. 이 시간 동안 선수들과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최상의 경기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의 벌어진 감정의 골도 메워야 한다. 이란전을 마친 후에는 이동, 우즈벡에서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갖게 된다.
축구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경기 전 준비다. 신태용 감독이 늘 강조하는 '예리한 축구'를 그려낼 수 있는 선수를 선발할 것이다 이란과 우즈벡을 깨부술 '현미경' 분석과 준비도 뒤따를 것이다. 어떻게 싸울 지를 정리한 게임 플랜도 세울 것이다.
그러나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면 그때부터 실전의 몫은 태극전사들이다. 그들이 기민하게 소통해서 이란과 우즈벡을 무찔러야 한다. 말로만 "최선을 다했지만 준비가 부족했다"는 식상한 코멘트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A대표팀에서 진짜 소통이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대표 선수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