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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스토리]부산 축구레전드 정용환 2주기…그를 부활시킨 '장학회'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7-06-01 20:25


고 정용환 전 부산축구협회 기술이사가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할 당시.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님은 갔지마는 우리 마음에서 함께 살아요."

1980∼90년대 한국축구 레전드 수비수. 은퇴 이후 음지에서 꿈나무 육성에 매달렸던 소박한 지도자. 한창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이루지 못한 생전 꿈은 아름답게 부활하고 있다.

부산 아이파크가 애절한 '레전드 데이'를 준비한다. 오는 5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리는 대전과의 K리그 챌린지 경기때 '고(故) 정용환 추모행사'를 열기로 했다.

고인은 2015년 6월 7일 위암 투병 끝에 5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1983∼1993년까지 11년간 빠짐없이 대표팀 수비수로 뛰었고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등 A매치 85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1984년 부산(당시 대우 로얄즈)에서 프로에 데뷔, 1994년까지 '원클럽맨'이었다. K리그 초반기 부산의 황금기를 도우며 1991년에는 K리그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은퇴 이후 유소년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신흥중·고(경기 동두천) 총감독, 부산축구협회 기술이사를 지내는 등 유·청소년 육성에 열정을 바치다가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고 정 전 이사는 부산 아이파크의 레전드를 뛰어넘어 부산 시민의 자랑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동래고를 나와 국가대표로 이름을 떨치면서 올드 부산팬들에겐 '기장군 횟집 아들'로 사랑받았다.


고 정용환과 '정용환 후원회'의 인연이 담긴 흔적들이다. 위 1, 2번째 사진에는 정 전 이사(앞줄 가운데)가 별세하기 전 후원회 회원들과 함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가 별세한 뒤에는 남은 회원들이 '꿈나무 장학회' 발족(맨 아래 사진)으로 그의 빈자리를 메웠다. 사진제공=정용환 축구꿈나무 장학회


부산 구단은 정 전 이사의 2주기를 맞아 현역 시절 누볐던 구덕운동장에서 추모식을 갖기로 했다. 올시즌 부산 '레전드 데이'의 3번째 주인공. 그동안 김주성-안정환이 직접 참가했지만 이번엔 영혼을 모신다. 주인공은 없지만 소중한 분신, 후계자들이 있다. '정용환 축구꿈나무 장학회(이하 정용환 장학회)' 회원들이다. 정용환 장학회의 회원은 모두 150여명. 이들 가운데 90% 가량이 중식당 등 음식점 대표들이다. 국가대표 먹거리 '짜장면' 잘 만드는 사장님인 것이다. 부산지역 중식당은 대부분 같은 날(화요일)을 정해 휴점하는데 이들 회원은 '정용환 추모식'을 위해 휴일을 하루 앞당겨 단체응원을 하기로 했다.


송춘열 정용환 장학회 회장(오른쪽)은 정용환 전 이사가 살아 있을 때 함께 했던 사진을 자신의 중식당에 전시해놓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며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정용환 장학회와 고인의 인연은 2003년 말 송춘열 회장(56)과의 우연에서 시작됐다. 부산 개금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송 회장은 지인의 소개로 정 전 이사를 알게 됐다. 때마침 그해 11월 부산 지역 음식업계의 친선 축구행사가 있었다. 중식당협회 회원들도 동호회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던 터라 송 회장의 초대로 대회장을 방문했던 정 전 이사. 꿈나무와 그 부모 세대의 생활축구를 통한 축구 보급에 열성적인 정 전 이사가 구경만 할 리 없었다. 정 전 이사가 즉석 원포인트 레슨 강사로 나서 2시간 넘게 중식당 축구팀의 코치가 됐다. 송 회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기본기부터 가르쳐주는 열정과 인간미에 회원들이 모두 감동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작은(?) 성의는 불씨가 됐다. 2004년 정 전 이사가 신흥중·고 감독으로 부임하자 축구레슨에 감동받았던 회원들이 '정용환 후원회'를 결성했다. 후원회는 '정사모(정용환을 사랑하는 모임)' 형식으로 시작됐지만 모임을 거듭하면서 고인의 열정에 부응하기 위해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축구 꿈나무를 돕는 봉사모임으로 발전했다. 회원들의 특기인 요리솜씨를 놀릴 수 있나.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을 초대해 짜장면 잔치도 벌였다. 이들의 따뜻한 활동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회원도 150여명으로 늘었다.


정용환 전 이사가 2015년 별세한 뒤 부산 구단이 마련한 추모공간. 사진제공=부산 아이파크


후원회는 정 전 이사가 별세하면서 꿈나무 장학회로 또 진화했다. 장례식장에 문상왔던 회원들이 "이참에 정식으로 장학회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것. 송 회장은 "고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남은 이들이 계승하자는 뜻에 모두 공감했다"면서 "그 분이 하늘에서 보시면서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장학회는 지난 2월 정용환배 꿈나무 축구대회를 신설했고, 축구팬을 위한 짜장면 봉사 등 꿈나무 육성을 위한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축구인 정용환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장학회를 통해 영원히 숨쉬고 있었다.

송 회장은 언젠가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목표가 있다고 했다. "적당한 부지를 마련할 수 있다면 고인의 흉상을 설치하고 그의 흔적이 담긴 유품들로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부산축구의 자존심을 알리고 싶습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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