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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근 전북 단장의 퇴장, 아쉬웠던 1세대 행정가의 마지막 길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7-02-05 18:36



10년 만의 아시아 정상에 오른 지난해 11월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환희가 넘쳤다. "2006년 시리아 원정 우승 때는 단 3명의 팬만 함께했다. 하지만 이번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원정에선 약 300명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이것이 바로 전북이 10년 동안 일궈낸 변화다."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전북 현대의 전성기를 연 이철근 단장(64)이 사임했다. 지난해 5월 불거진 심판 매수 의혹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전북으로선 뼈 아픈 시간이었다. 2013년의 범법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전북의 스카우트 A씨가 심판 B와 C씨에게 각각 두 차례와 세 차례에 걸쳐 경기당 100만원씩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A씨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의 징계가 뒤따랐다. 승점 9점 삭감과 함께 벌금 1억원이 부과됐다. 전북은 다잡은 K리그 3연패를 놓쳤다. 하지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는 해피엔딩이었다. 알 아인을 꺾고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아시아를 제패했다.

그러나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해 들어 내려진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징계 소식이었다. 전북은 지난달 ACL에서 퇴출됐다. AFC 산하 독립기구인 출전관리기구(Entry Control Body·ECB)는 전북의 2017년 ACL 출전권을 박탈했다. 전북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 등을 통해 명예회복을 노렸다. 그러나 CAS는 3일 전북의 제소를 기각했다.

사안이 마무리된 시점에 맞춰 이 단장이 책임을 지고 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안기헌 대한축구협회 전무, 한웅수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 등과 함께 '1세대 축구 행정가'였다. 1982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이 단장은 울산 현대 사무국장을 거쳐 2003년 전북의 사무국장을 맡았다. 2005년 전북 단장에 올랐고, 무려 12년간 전북을 이끈 '최장수 단장'이었다.

이 단장은 최강희 감독과 함께 전북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가 단장을 맡을 당시 전북은 그저 그런 '지방구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7년 판 전북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이다. '심판매수'라는 꼬리표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주소다. 두 차례의 ACL 우승(2006년, 2016년)과 네 차례의 K리그 정상(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은 이 단장과 최 감독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었다.


'비전 2015', '비전 2020' 프로젝트, 유럽도 부러워하는 최첨단 클럽하우스 건립 등 행정가로서 공도 컸다. 특히 대부분의 구단이 지갑을 닫을 때 역발상 전략으로 전북을 K리그의 리딩구단으로 변모시켰다. '폭풍 영입'을 통해 팬들의 자존감을 일깨웠다. 전북은 2015년 지방구단이라는 편견을 깨고 사상 첫 평균 관중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전북을 인구 60만에 불과한 전주시의 '명물'로 재탄생 시켰다.

이 단장은 '비전 2020'을 통해 구단의 100년 대계를 꿈꿨다. 정유년에는 선진 유소년 시스템 구축과 프런트의 역량 강화를 위한 글로벌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1년을 설계했다. 하지만 그가 맞춰놓았던 전북 시계는 2017년 2월 멈춰 섰다.

이 단장의 사임에 전북의 구성원들은 '충격'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심판 매수 의혹에 따른 ACL 출전권 박탈과 CAS의 기각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단장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물론 뒤늦은 사퇴라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가 일궈낸 공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는 없다.

이 단장의 마지막 길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전북은 다시 정상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는 곧 후임 단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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