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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연탄 묻힌 축구스타들, 104마을에 온기를 전하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12-14 21:12



올들어 가장 추웠던 14일, 하늘에서는 눈까지 내렸다. 가파른 비탈길이 더욱 미끄러웠다. 그래도 검은 연탄이 묻은 얼굴 사이로 환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14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에 위치한 104마을.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대표적인 '달동네'다. 1000가구가 밀집해 있는 이곳에서 600개구가 연탄을 사용해 추운 겨울을 나야한다. 대한축구협회가 발벗고 나섰다. 벌써 4번째 후원이다. 축구협회는 2013년부터 연간 1000만원씩 총 2만장의 연탄을 후원하고 있다.

이날은 3000장의 연탄을 직접 날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해 협회 임직원, A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코칭스태프, SNS로 뽑힌 축구팬 20명 등 100명이 연탄 배달에 나섰다. 달콤한 휴가를 보내던 곽태휘(서울) 이근호(강원) 권창훈(수원) 김승규(빗셀 고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 지소연(첼시 레이디스) 등도 동참했다. 정 회장은 "축구로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일에 앞장 설 것"이라고 했다. 귀한 손님들을 맞이한 허기복 서울연탄은행장은 "눈은 풍년과 축복을 의미한다. 내년 한국축구가 잘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배달은 나이, 지위 고하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이뤄졌다. 다리가 불편한 슈틸리케 감독만 열외였다. 대신 그는 지게에 연탄을 싣는 일을 전담했다. 정 회장이 가장 먼저 지게를 짊어졌다. 그는 "작년 보다 더 힘든 것 같다"고 웃었다. 임원진과 직원들, 지도자들도 따라 올해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 훈훈한 분위기와 달리 연탄배달은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5㎏.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할 때만 해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진짜 연탄배달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다.

속도를 내는 이들은 역시 훈련으로 다져진 선수들이었다. 6개씩 짊어지고 고개를 오르던 선수들이 리어카를 찾았다. 한번에 50여장을 실었다. 권창훈 김승규 이근호 김진현 등 건장한 선수들이 힘을 모으자 쏜살 같이 언덕을 올랐다. 배달지에 도착하자 저마다 "앞이 힘들다", "뒤가 힘들다" 옥신각신이다. 리어카 앞에서 끌던 '힘없는 막내' 권창훈은 그 틈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만 힘쓴거 같아요." 지켜보던 형들이 웃었다. 싣고 온 연탄을 나르는 것은 골키퍼가 일등이었다. 김진현이 큰 손으로 연탄을 거침없이 나르자 여기저기서 "체질이네, 체질"이라는 감탄사가 연신 쏟아진다. 이날 처음으로 봉사활동에 참석한 차두리 전력분석관은 여기서도 해피 바이러스를 뿜어댔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웃음꽃이 피었다. 여자 선수들도 빼지 않고 힘을 실었다. 얼굴에 연탄자국이 선명했지만 웃음만은 잃지 않았다.

고된 연탄배달의 유일한 낙은 역시 간식 타임이었다. 뜨끈한 어묵이 모두를 유혹했다. 함께 모여 어묵과 국물을 먹으며 추위를 녹였다. 1시간30분 가량의 봉사활동이 끝나자 모두 함께 박수를 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지소연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다. 할때는 힘든데 역시 하고 나면 뿌듯하다"고 웃었다. C급 자격증 코스 이수 중 달려온 곽태휘는 "사실 할게 많아 내심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대표해서 이자리에 온만큼 열심히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고 했다. 롤러코스터를 탔던 2016년 한국축구의 대미는 이렇게 104마을에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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