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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얼떨떨하네요. 울먹였던 게 쑥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그 여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 감독은 4일 집안에 푹 틀어박혀 가족들과 편안하게 함께 한 시간을 가졌다. "가족과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낸 지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라고 했다.
그랬다. 그의 말대로 무척 오랜 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이다. 2016년. 스타 선수 출신 축구 지도자 서정원에게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세월이었다.
서 감독은 FC서울과의 2016년 KEB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 승리하며 팀에 내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선물했고 팬들에게는 '실망감→환희'를 선사했다.
이런 결과물이 축구인 서정원의 2016년 기억을 모두 치유하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정말이지 너무 힘든 1년이었습니다." 3일 수원의 우승이 확정된 뒤 수원 구단과 선수단 모두가 환호하고 있을 때 서 감독은 울먹이고 있었다.
경기 전날 까지만 하더라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수원의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비장함이 가득했던 '진짜 사나이'였다. 하지만 막상 올 시즌 마지막 꿈에 도달하자 파란만장했던 2016년 시즌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웬만한 위기에도 냉철한 것 같던데 왜 울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서 감독은 "펑펑 운 것도 아니고…, 우승 소감을 얘기하다 보니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지금 생각하니 좀 쑥스럽네요. 아직 얼떨떨하기는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제서야 웃음으로 받아넘길 만큼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그의 눈물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승의 기쁨보다 애환이 더 가득한 메시지다. 서 감독은 올해 선수 시절을 통틀어서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선수 시절은 물론 지난 2년 연속 준우승을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비난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올 시즌 축구팀 수원의 현실은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팬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난생 처음으로 화가 난 서포터들에 가로막혀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의 거취를 둘러싸고 우려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서 감독은 "팬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만큼 우리 수원을 사랑하기 때문이니까요"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런 채찍들이 나를 비롯해 선수들을 강하게, 간절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승까지 하지 않았나 싶네요"라고 말했다.
서 감독은 3일 저녁 선수단과 우승 회식을 하면서 축하주 한 잔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도 하지만 너무 간절했던 나머지 연극무대의 막이 내렸을 때 심정처럼 기가 모두 빠져 술 마실 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고진감래. 전화위복이 딱 어울리는 감독 '서정원'의 2016년. 겪었던 고통이 컸기에 그의 손에 들린 FA 우승컵은 더 반짝 빛나 보였다. 그는 이제 차분하게 내년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전북 현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명색이 ACL은 아시아 정상급 클럽들이 참가하는 빅리그다. 올 시즌 전북이 보여준 사례처럼 여기에 걸맞는 위용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다.
서 감독은 "이번에 따낸 ACL 출전권은 과거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그 소중함이 퇴색하지 않도록 또다른 간절함으로 준비해야지요"라고 다짐 또 다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