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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62번째 생일이었다. 경기장 한 켠에는 그의 아내 모습도 보였다. 그녀 또한 사선의 경계에 있는 남편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가슴을 졸인 채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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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은 지독할만큼 얄궂었다. 승리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한국은 오히려 어이없는 선제골을 헌납했다. 전반 24분이었다. 수비수 김기희가 시도한 헤딩 백패스가 약했다. 골키퍼 김승규가 뛰어나오며 걷어냈지만 상대의 발끝에 걸렸다. 비크마에프였다. 그는 볼을 잡아 김승규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빈 골문을 향해 길게 슈팅을 날렸다. 그리고 골망이 흔들렸다.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탈출구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전반의 문이 닫혔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45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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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한 상황은 후반 초반까지 이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이 승부수를 던졌다. 후반 17분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대신 이재성(전북)을 투입했다. '신의 한 수'였다. 이재성은 저돌적인 돌파로 우즈벡의 수비라인을 허물기 시작했다. 균열이 일어났고, 기다리던 동점골이 5분 뒤 터졌다. 슈틸리케호의 원조 황태자 남태희(레키야)였다. 그는 박주호(도르트문트)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 골망을 흔들었다.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슈틸리케 감독의 두 번째 교체카드도 적중했다. 후반 21분 이정협(울산) 대신 김신욱(전북)이 그라운드를 밟으며 공중볼 장악에 나섰다.
결국 김신욱의 머리에서 역전골이 나왔다. 교체투입된 홍 철(수원)이 센터서클 왼쪽 부근서 길게 올린 볼을 김신욱이 아크 오른쪽에서 헤딩으로 연결했고, 문전 왼쪽으로 쇄도하던 구자철이 왼발슛으로 멋지게 마무리했다. 날씨만큼 차갑게 얼어붙었던 슈틸리케 감독의 입가에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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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에서 첫 출발부터 살얼음판을 걸었다. 중국과의 1차전에선 3-0으로 리드하다 두 골을 내주며 3대2로 간신히 승리했다. 시리아와의 2차전도 악몽이었다. 원정경기가 중립지역에서 벌어졌지만 득점없이 비기며 승점 1점을 챙기는 데 그쳤다. 카타르와의 3차전도 찜찜했다. 홈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한 명이 퇴장당하는 졸전 끝에 3대2로 승리했다. 우려스러운 승점 3점이었다. 여파는 4차전 이란 원정까지 이어졌다. 유효슈팅 '0개'의 치욕 끝에 0대1로 패했다.
하지만 반환점인 우즈벡전에서 반전에 성공했다. 월드컵 본선행 직행 티켓은 각 조 1, 2위에만 주어진다. 조 3위가 되면 플레이오프(PO) 나락으로 추락한다. 슈틸리케호는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슈틸리케 감독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가 상암벌에 울려퍼졌다. 한국 축구가 기사회생하는 순간이었다.
눈물을 닦고 인터뷰에 응한 슈틸리케 감독의 상기된 표정은 모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는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것은 경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즈벡이 그동안 1실점밖에 안할 정도로 수비가 견고했다. 상당히 어렵게 경기를 풀어갔는데 역전승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대로 획득할 수 있는 승점은 15점이었다. 15점은 과장일 수 있지만 시리아전에서 2점을 잃었다. 반환점을 돌 때 2위 탈환이 상당히 중요했다. 이제 다시 좀 더 차분하게 후반기를 준비하겠다. 오늘 전반이 끝났을 결과로만 보면 우리는 우즈벡에 승점 5점 뒤져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모두 끝난 뒤 1점 앞서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