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위기에서 강했다.
슈틸리케호는 15일 사실상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우즈베키스탄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을 맞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한국은 A조에서 승점 7(2승1무1패)로 3위, 1위 이란(3승1무·승점 10)과 2위 우즈벡(3승1패·승점 9)에 적잖은 승점 차로 밀려 있었다.
A조 최강이라 자부하던 한국이 4경기를 하도록 3위로 처진 것도 문제였지만 그동안 드러낸 강인하지 못한 경기력에서 더 많은 지탄을 받았다. 뭔가 찜찜하던 슈틸리케호의 행보는 지난달 11일 이란과의 4차전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번 우즈벡전을 앞두고 최근의 '국민 촛불시위' 정국을 빗대 '우즈벡전 패배 시 슈틸리케 하야'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말 그대로 더 이상 물러 설 데가 없는 '단두대 매치', 슈틸리케 체제의 퇴진 여부가 달린 마지막 기회였다.
이런 절박한 상황은 이날 경기 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잘 나타났다. 경기장 북쪽 레드존 관중석은 대형 카드섹션 '절대승리'로 뒤덮였다. 그동안의 오명을 딛고 반드시 승리하라는 축구 민심의 명령이자 간절한 호소였다. 경기 시작 50분 전 워밍업을 하러 그라운드에 입장한 선수들이 모두 도열해 관중석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올리며 '절대승리'에 화답할 것을 다짐했다.
|
막상 뚜껑이 열리자 태극전사의 투지가 돋보였다. 주장 기성용이 안쓰러울 정도로 전-후방을 마구 휘저으며 동료들의 파이팅을 선도했다. 하지만 전반 20분까지였다. 25분 어이없는 수비진의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더니 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경기를 지켜 본 한 축구 전문가는 "열심히 뛰기는 했지만 저돌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거친 몸싸움과 몸을 날리는 투혼은 상대적으로 우즈벡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태극전사가 아니었다. 후반이 시작되자 경기 흐름이 다시 바뀌었다. 초반부터 주도권을 장악한 한국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우즈벡의 극렬한 저항에도 호랑이처럼 달려들며 좌우 측면을 마구 흔들었다. 이재성과 김신욱의 교체 투입으로 골을 향한 열망은 더욱 강해지는 듯 보였다. 끊임없는 '전진 앞으로'의 결실이 22분에 나온 박주호에서 남태희로 이어진 동점골이었다.
이후 한국은 쉼표가 없었다. 상대의 밀집수비에도 몸이 부서져라 뛰는 의욕이 엿보였다. 태극전사의 투지만큼이나 경고성 파울을 마다하지 않으며 맥을 끊으려는 우즈벡의 항전도 강했지만 '절대승리'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는 교훈에 걸맞게 종료 5분 전 극적인 역전골로 '투혼'의 대미를 장식했다. 위기에서 건진 승리라 상암벌 함성은 더욱 우렁찼다.
상암=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