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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90분이었다.
서울은 눈을 돌릴 곳이 없었다. 승리 외에는 희망은 없었다. 확률은 높지 않았다. 서울은 올 시즌 K리그에서 전북과 3차례 맞닥뜨려 전패를 기록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4강전에서 1승1패를 기록했지만 전북의 힘은 무서웠다. 하지만 갱없는 드라마의 주연은 서울이었다.
파격 그리고 파격
반면 황 감독은 K리그에서 단 한경기도 뛰지 않았던 21세 신예 윤승원을 선발 출격시켰다. '풋내기 카드'를 최종전에 내밀며 상대의 허를 찔렀다. 최 감독은 "황 감독은 지난 번에도 새 카드를 내밀었다가 실패했다. (ACL 1차전에서) 전반 3골을 먹었던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황 감독답지 않게 후반에 승부를 보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교체 수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또 비겨도 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황 감독은 "포지션을 흔들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다. 때로는 노련미가 필요하지만, 패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며 "분위기 싸움이다. 전북이 홈에서 강하다. 단판 승부의 느낌도 있다. 초반부터 거친 경기를 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냉정하게, 침착하게 넘기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총성없는 최후의 전쟁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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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여전히 '불안'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경고를 받은 후 보수를 했지만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 들쭉날쭉한 그라운드 컨디션은 복병이었다.
그럼에도 양팀 선수들의 투지는 최종전다웠다. 두 팀의 신경전은 전반부터 불을 뿜었다. 주세종과 레오나르도가 충돌 직전까지가는 험악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지만 날카로움은 떨어졌다. 그 자리를 긴장감이 메웠다. 전반은 침묵 모두였고, 황 감독은 전반 36분 일찌감치 실험을 접었다. 윤승원 대신 박주영을 투입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기다리던 골도 드디어 터졌다. 녹색이 아니었다. 검붉은 유니폼이 춤추듯 넘실거렸다. 후반 13분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결국 슈퍼스타가 해결했다. 박주영이 윤일록의 크로스를 오른발로 화답, 골망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주영은 올 시즌 K리그 10호골을 '우승골'로 연결했다. 역시 스타는 다르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는 '경고'를 감수하며 상의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전북은 비기기만 하면 우승이었다. 최 감독은 이동국과 고무열을 차례로 투입했다. 후반 종료 직전 마지막 코너킥 세트피스에선 골키퍼 권순태까지 공격에 가담했다. 그러나 자물쇠로 채운듯 단단하게 잠긴 서울의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K리그 챔피언 서울
서울은 올 시즌 K리그와 ACL, '더블 우승'을 꿈꿨다. 하지만 암초가 있었다. 시즌 도중 큰 변화를 겪었다. 최용수 감독이 장쑤 쑤닝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후 황선홍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연승도 있었지만 시행착오도 겪었다. 전술적으로 스리백과 포백을 오가는 실험이 이어졌다.
ACL에선 전북에 발목이 잡혀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K리그는 달랐다. 마지막 결승전 무대에서 '절대 1강' 전북을 격침시키고 2016년 K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날 경기장에는 3만3706명이 구름관중이 몰렸다. 그중 서울 팬들은 약 1500명이었다. 비록 절대 소수지만 목청이 터져라 응원한 그들은 짜릿한 환희를 선물로 받았다. 서울의 날, 황선홍의 날, 박주영의 날이었다.
전주=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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