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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전]'300대8만', 용감했던 교민들의 '조용한 분투'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6-10-12 01:29



조용했다. 하지만 용감했다.

한국 교민들의 이야기다. 11일(한국시각)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스타디움. 8만명에 육박하는 이란 관중들이 아자디스타디움에 운집했다. 이날 한국과 이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이 벌어졌다.

A대표팀 역사상 최초 이란 원정 승리를 위해 칼을 갈았던 슈틸리케호. 아쉽게 0대1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태극 전사들을 뒤에서 묵묵히 그리고 용감히 응원해준 교민들이 있었다.

이날 이란에 거주하는 300여명의 교민이 아자디스타디움을 찾았다. 아자디스타디움 한 켠에 마련된 한국인 전용 좌석에 자리했다.

얼핏 봐도 아자디스타디움의 분위기는 투박하다 못해 호전적이었다. 꾸밈없는 시멘트 외관부터 자욱한 담배 연기. 음주가 법으로 금지된 이란이다. 하지만 경기장 내 8만여 관중들은 모두 독주라도 한 듯 열광적인 열기를 뿜어냈다. 구름 관중이 모두 남성이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내는 응원의 목소리는 '굉음'이라는 표현만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 속에 작게 버티고 선 한국 교민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란에 거주하는 대학생 공대현씨는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서 경기가 있는지 알게됐다"고 했다. 한눈에 봐도 건장한 체구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지만 경기장에 가기 두려웠다고 한다. 공씨는 "이날은 타슈아다. 종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날이다. 이란 사람들은 금지된 것들이 많아 스포츠로 모든 것을 풀어내는 경향이 있다"며 "난폭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솔직히 무섭고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교민들은 따로 마련된 입구를 통해 경기 직전 입장했다. 이란 관중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최소화하긴 위한 조치.

한국하면 '붉은 악마'다. 붉은색은 한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교민들은 모두 어두운 색의 옷을 입었다. 공씨는 "이란 정부에서 서한을 보냈다. 절대 붉은색, 밝은 색 계통 의상을 입지 말라고 했다. 꽹가리, 북과 같은 응원도구도 일절 챙기면 안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교민들의 유일한 응원도구는 미니 태극기와 목소리 뿐이었다.

이색적인 장면도 있었다. 이란에서는 여성이 경기장을 출입할 수 없다. 최근 가능케 됐지만 금기로 인식된다. 하지만 외국인은 예외다. 여성 교민들도 자리했다.


최유림씨는 "이란에서 지낸 지 3개월 됐다"고 했다. 아직 히잡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는 최씨.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서 큰 함성 내는 것을 들으니 신기하면서도 무섭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많은 남성들을 한 번에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교민은 "이란에 있으면서 축구를 몇 번 봤다. 평소엔 착한 이란 사람들이지만 분위기에 휩쓸리면 정말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조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와서 고생을 하는데 우리라도 와서 응원을 해야하지 않나"라며 웃었다.

300대8만으로 싸운 교민들의 용기. 비록 그들의 목소리는 파묻혔지만 박수 받을 만 했다.


테헤란(이란)=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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