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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다. 하지만 용감했다.
이날 이란에 거주하는 300여명의 교민이 아자디스타디움을 찾았다. 아자디스타디움 한 켠에 마련된 한국인 전용 좌석에 자리했다.
얼핏 봐도 아자디스타디움의 분위기는 투박하다 못해 호전적이었다. 꾸밈없는 시멘트 외관부터 자욱한 담배 연기. 음주가 법으로 금지된 이란이다. 하지만 경기장 내 8만여 관중들은 모두 독주라도 한 듯 열광적인 열기를 뿜어냈다. 구름 관중이 모두 남성이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내는 응원의 목소리는 '굉음'이라는 표현만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한국하면 '붉은 악마'다. 붉은색은 한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교민들은 모두 어두운 색의 옷을 입었다. 공씨는 "이란 정부에서 서한을 보냈다. 절대 붉은색, 밝은 색 계통 의상을 입지 말라고 했다. 꽹가리, 북과 같은 응원도구도 일절 챙기면 안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교민들의 유일한 응원도구는 미니 태극기와 목소리 뿐이었다.
이색적인 장면도 있었다. 이란에서는 여성이 경기장을 출입할 수 없다. 최근 가능케 됐지만 금기로 인식된다. 하지만 외국인은 예외다. 여성 교민들도 자리했다.
최유림씨는 "이란에서 지낸 지 3개월 됐다"고 했다. 아직 히잡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는 최씨.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서 큰 함성 내는 것을 들으니 신기하면서도 무섭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많은 남성들을 한 번에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교민은 "이란에 있으면서 축구를 몇 번 봤다. 평소엔 착한 이란 사람들이지만 분위기에 휩쓸리면 정말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조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와서 고생을 하는데 우리라도 와서 응원을 해야하지 않나"라며 웃었다.
300대8만으로 싸운 교민들의 용기. 비록 그들의 목소리는 파묻혔지만 박수 받을 만 했다.
테헤란(이란)=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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