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리우]'악바리' 김소희의 미소, 부모님의 눈물 '황홀했던 리우의 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6-08-18 22:00


김소희가 1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에서 세르비아 티야나 보그다노비치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후 환호하고 있다. 2016.8.17./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M

김소희(22·한국가스공사)는 악바리다.

좀체 포기를 모른다. 2011년 경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좋은 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훈련 중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다쳤다. 설상가상으로 전날 치른 16강에서 왼손 약지가 부러졌다. 살을 밀고 밖으로 삐져나온 뼈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의사조차 출전을 만류했지만 김소희는 도핑을 우려해 진통제도 없이 경기장에 섰다. 응급붕대에 아픈 손과 발을 맡긴 김소희는 끝내 금메달을 따냈다. 경주세계선수권대회는 김소희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였다.

운동도 독하게 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 태권도를 시작한 김소희는 하루에 도장을 서너번씩 갔다. 개인훈련도 거르지 않았다. 운동으로 단련된 막강 체력에 관한 일화가 있다. 서울체고 재학 중이던 김소희는 고교 구간 마라톤 대회에 출전, 종합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별명은 '산소통'이다. 이처럼 독하게 운동을 한 덕에 김소희는 고교 시절부터 적수가 없었다. 국제 무대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2011년 세계선수권과 2013년 멕시포 푸에블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을 연이어 제패하며 2연패에 성공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까지 거머쥐었다.

그가 그토록 피나게 운동을 한 이유는 단 하나, 부모님을 위해서였다. 화재사고로 빚더미에 앉은 가정을 위해 밤낮 없이 뛰신 부모님을 위해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목표 달성의 무대는 바로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세상사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올림픽을 향한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마음에 급기야 하늘을 원망했다. 올림픽에는 그가 뛰던 46㎏급이 없어 49㎏급으로 체급을 올려야 했다. 두 체급을 병행하다보니 체중 조절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부족한 올림픽 랭킹을 올리기 위해 1년 수십번씩 비행기를 타야 했다. 피로누적으로 갈라진 입안은 아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지성에도 감천은 없는듯 보였다. 지난해 12월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1회전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그의 랭킹은 7위. 6위까지 주어지는 자동출전권 획득에 단 1승이 부족했다. 그의 올림픽 꿈은 그렇게 흩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무심한 척 했던 하늘은 결국 그의 편이었다. 파니팩 웅파타나키트(태국)가 예상치 못한 동메달을 차지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태국 선수가 6위안에 2명이나 들며 극적으로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태권도 한국 대표 김소희가 17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에서 세르비아의 티아나 보그다노비치와 대결하고 있다. 김소희는 경기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6.8.17./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F
꿈에 그리던 리우행 티켓을 거머쥔 김소희는 더 열심히 뛰었다. 남보다 부족한 점을 알기에 2~3배 더 노력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밤에는 긴장감이 심해져 잠도 자지 못할 정도였다. 그럴수록 나약해지지 않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가 흘린 땀에는 밤낮이 없었다. 열심히 하면 할 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베이스캠프였던 상파울루를 떠나 리우로 도착한 순간 마음이 더 편해졌다. 리우에 오기 전 인형 세개를 뽑는 꿈을 꿨다. 좋은 조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몽이었다. 결국 그의 소중한 노력은 값진 결실을 맺었다. 김소희는 18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 올림픽파크 내 카리오카 아레나3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태권도 여자 49㎏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늘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그의 품에 어렵사리 안긴 금메달이었다. 8강에서 '세계 2위' 파니팩 웅파타나키트(태국)를 맞아 막판 짜릿한 얼굴 공격을 성공시키며 6대4 역전승을 거둔 김소희는 야스미나 아지에즈(프랑스)와의 4강전에서도 골든 포인트로 승리했다. 어려운 순간마다 악바리 근성으로 고비를 넘었다. 마지막까지 단 한번도 쉬운 승부는 없었다. 결승에서 티자나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를 만난 김소희는 마지막 순간 상대의 챌린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7대6 승리를 확정지었다. 명실상부한 태권여제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욕심 많은 김소희 답게 딱 하나 아쉬움은 있다. 바로 이 체급 2연패에 빛나는 '최강' 우징위(중국)를 상대하지 못한 것이다. 김소희는 두번의 패배를 안긴 우징위를 꺾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입만 열면 금메달이 아닌 우징위를 잡으러 왔다고 했을 정도다. 영상도 수없이 돌려보고, 수만가지 전술도 세웠다. 하지만 우징위는 8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탈락은 금메달 가도에 파란불을 켰다. 하지만 김소희의 생각은 달랐다. 우징위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그의 부모님이 와 있었다. 전날 '노력한 것 모두 쏟아붙겠다'는 카톡 한번이 다였다. 마음이 약해질까봐 결승까지 얼굴 한번 마주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관중석에서 제대로 경기를 지켜보지 못했다.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악바리', '산소통'으로 불리지만 아직 부모님의 눈에는 자다가 수시로 코피를 쏟는 허약한 딸일 뿐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김소희는 부모님 손을 꼭 잡았다. 손끝에서 전해진 따뜻한 온기가 가슴을 타고 뜨거운 눈물로 흘러내렸다. 오직 딸을 뒷바라지 하느라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다는 부모님. 그 따뜻한 품 안에서 가장 여린 소녀였던 김소희는 어느덧 가장 강한 태극소녀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안겼다. 애국가와 함께 마침내 목에 걸린 금메달, '호강 시켜드리겠다'는 효녀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태권도 한국 대표 김소희가 1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서 세르비야의 티야나 보그다노비치를 누르고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입을 맞추고 있다. 2016.8.17./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H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페이스북트위터]

- Copyrightsⓒ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