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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대학연맹전]父빈소 대신 벤치 선 정광민 경기대 감독의 '사부곡'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6-07-31 19:23



7월 29일 강원도 태백종합경기장.

그라운드에 선 경기대 선수단의 눈빛은 결연했다. 경기대는 이날 영남대와 제47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 결승전에 나섰다. 1991년 창단 이래 경기대가 대회 결승에 오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경기대는 수도권 대학 축구팀 중 약체로 분류된다. 춘계대학연맹전과 더불어 '양대 대회'로 꼽히는 추계연맹전에서 경기대가 결승까지 치고 올라온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지난해 초 일부 선수들의 일탈 행위로 인해 축구부가 없어질 위기까지 몰렸던 아픔까지 감안하면 더욱 의미가 깊었다.

경기대 선수들은 왼팔에 '조의(弔意)'를 뜻하는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다. 스승 정광민 경기대 감독(40)을 위한 것이었다. 정 감독은 결승을 하루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다. 부친이 영면한 전남 화순은 승용차로 6시간, 400㎞가 넘는 거리였다. 급히 태백에서 화순까지 달려갔던 정 감독은 결승전 당일 새벽 선수단 숙소로 돌아왔다. 부친을 떠나보낸 아픔은 잠시 뒤로 했다. 정 감독은 이날 검은 셔츠와 바지를 착용한 채 벤치를 지켰다.

정 감독은 현역시절 K리그 대표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1998년 안양LG(현 FC서울)에서 프로에 데뷔해 2년 뒤 팀의 K리그 제패에 일조했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아 A대표팀에 승선하기도 했다. 군 입대와 부상으로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났으나 복귀 후 2007년 대구서 은퇴할 때까지 K리그 통산 147경기에서 34골-14도움을 기록했다. 지난해 코칭스태프 없이 6개월 간 명맥만 유지하던 경기대를 맡아 팀을 정상화 시켰고 추계연맹전 결승까지 올랐다. 누구보다 자신이 일군 성과를 기뻐할 부친을 떠나 보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제자들만 전장에 내보낼 순 없었다.

하지만 정 감독과 경기대의 간절함은 최후의 영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대학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는 영남대의 벽은 높았다. 전반에만 3골을 내준 경기대는 경기 막판 1골을 만회했지만 결국 1대4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정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과 어깨를 두르고 선 자리에서 흐느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취재진과 만난 정 감독은 "비록 패했지만 전혀 아쉽지 않은 결과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선수들이 정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 오늘의 경험이 앞으로 큰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임 후 혼자 팀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롭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면서도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줘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학교 측에서 축구부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감독이 부족해서 오늘 패하긴 했지만 결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여건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차분하게 소감을 밝히던 정 감독은 하늘로 떠나간 부친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준우승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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