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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크라머의 나라'네덜란드 빙속은 왜 강한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6-03-08 15:45 | 최종수정 2016-03-09 05:59


에이미 펠리시아 아눅, 스케이팅을 즐기는 네덜란드 소녀들이 7일 위트레흐트 네덜란드왕립빙상연맹(KNSB) 사무실 아래 위치한 스피드스케이팅 400m 트랙 아이스링크 '더 베흐츠 바는(de vechtse banen)'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네덜란드에는 '엘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라는 세계 최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대회가 있다.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 주의 강과 운하를 연결해 11개 도시, 200㎞ 를 일주하는 대회다. 200여 명의 엘리트선수들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2만여 명의 스케이트 동호인, 시민들이 이들의 뒤를 따라 질주한다. 스케이트 애호가인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도 황태자 시절인 1986년 신분을 숨기고 몰래 참가했다가 유쾌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이 대회 우승을 더 큰 영예로 여긴다. 안전을 위해 모든 구간의 얼음이 자연적으로 15cm이상 얼었을 때만 열리기 때문에 영하 20도 이하의 엄동설한이 아니면 열리지 못한다. 1909년 첫 대회가 열린 후 마지막 대회는 1997년이었다. 매년 겨울, 네덜란드인들은 '강추위'를 열망한다. 따뜻했던 지난 겨울에도 이 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소치동계올림픽 23인의 메달리스트
#. 네덜란드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빙속 최강국'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만m, '철인' 이승훈의 깜짝 금메달 후 그를 목마 태웠던 '착한 네덜란드인' 밥데용의 스포츠맨십을 기억한다. 당시 '네덜란드 최강자' 스벤 크라머가 인코스, 아웃코스를 헷갈리는 실수로 금메달을 놓쳤다. 소치올림픽에서 네덜란드는 발군이었다. 무려 23개의 메달(금 8, 은 7, 동 8)을 휩쓸었다. 밴쿠버올림픽(금4, 은1, 동3)의 3배가 넘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일가도 스케이팅을 즐긴다. 스케이팅 애호가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신은 채 프러포즈했다. 1986년 '엘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에도 신분을 일반인으로 위장한 채 몰래 출전한 적이 있다.

7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네덜란드왕립빙상연맹(KNSB) 사무실 아래 위치한 스피드스케이팅 400m 트랙 아이스링크 '더 베흐츠 바는(de vechtse banen)'에서 어린 선수들이 스케이팅을 배우고 있다.
7일(한국시각)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위치한 네덜란드왕립빙상연맹(KNSB) 건물을 찾았다. 건물 1층에는 스피드스케이팅 400m 트랙 아이스링크 '더 베흐츠 바는(de vechtse banen)'이 있었다. KNSB는 3년전부터 아이스링크 바로 위층에 입주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스케이트를 맨 동호인들이 쉴새없이 건물을 오갔다.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스케이트는 1600년대부터 주요 이동수단이었다. 1889년 KNSB가 설립됐고, 1892년 강을 얼려 첫 스피드스케이팅 대회를 열었다. 1901년 시작된 '엘프스테덴토흐트'는 어린아이부터 국왕까지, 전국민이 참가하는 스케이팅 축제로 자리잡았다. 스케이트를 사랑하는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빙판위에서 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왕비에게 프러포즈했다. 네덜란드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은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종목이다.

"네덜란드가 스피드스케이팅에 유독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취재진의 질문에 ? 스눕 KNSB 언론홍보부장은 이렇게 답했다. "네덜란드의 스피드스케이팅 등록선수는 15만 명에 달한다. 400m 트랙 경기장만 무려 17개가 있다. 국민 누구나 스케이팅을 즐긴다." 옌네케 보헤르드 KNSB 국제부장 역시 "네덜란드인들이 태어나서 걷는 것, 수영, 자전거 다음으로 배우는 것이 스케이팅이다. 네덜란드인들 안에 스케이팅의 피가 흐른다"고 답했다.


10살 소년들과 60~70대 할아버지가 함께 얼음을 지친다.

스벤크라머, 밥데용

링크 내벽에는 세계선수권 챔피언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KNSB로부터 직접 들은 '빙속 강국' 네덜란드의 힘은 '생활체육'이다. 생활체육의 막강한 저변을 토대로 폭넓은 동호인, 선수층이 조성된다. 이를 통한 피라미드식 최정예 선수 선발이 가능하다. 세계 '톱클래스'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팀간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도 정착돼 있었다. 스눕 부장은 "네덜란드 전체에 700여 개의 클럽이 있다. 이중 프로 수준의 팀은 5~6팀 정도이고 팀당 6~10명의 선수가 가입돼 있다"고 했다. 선수등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국가대표로 선발되려면 '바늘구멍'경쟁을 뚫어내야한다. "프로뿐 아니라 프로가 아닌 선수들도 누구나 선발전에 참여할 수 있다. 선수 등록한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먼저 아마추어클럽에 가입하고, 시-주 선발전을 거쳐, 프로팀에 스카우트 되면 프로팀 선수들간의 경쟁을 통해 국가대표로 발탁된다"고 했다. "세계선수권에서 8회 우승한 '올림픽 챔피언' 스벤 크라머라고 해도 자동선발은 절대 없다. 똑같은 선발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신 실력만 좋다면 누구나 언제든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국가대표가 된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풍부한 저변과 공정하고 치열한 선발 시스템을 통해 단련되고 선발된 선수들은 강할 수밖에 없다.


? 스눕 KNSB 언론홍보부장이 대한빙상연맹과의 파트너십을 소개하고 있다.

? 스눕 KNSB 언론홍보부장이 네덜란드빙상 대표팀 용품후원사 휠라코리아와의 파트너십을 소개하고 있다

당장의 성적보다, 더 많은 이들이 더 즐겁게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것이 KNSB의 꿈이자 목표다. "특정 선수들이 잘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스케이팅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한 선수를 지원하기보다는 많은 어린이들, 더 많은 팬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나라, 다양한 파트너들과의 제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 최대 통신사업자 KPN은 KNSB의 가장 큰 후원사다. 2014년 한국 스포츠브랜드 휠라와 경기복 및 용품 후원협약도 맺었다. 휠라는 평창올림픽 때까지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인라인스케이트 등 해당종목 국가대표 및 유청소년 대표팀에 경기복, 트레이닝복 등 의류 및 용품 일체를 지원한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및 대한빙상연맹과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2014년 11월 네덜란드 국왕의 청와대 국빈 방문 당시, KNSB는 대한빙상연맹과 MOU를 체결했다. 한국 청소년대표팀과 훈련캠프 등 상호 교류의 기회도 이어가고 있다.

1층에 위치한 아이스링크 '더 베흐츠 바는'에는 평일 오후 4시에도 동호인, 선수들이 넘쳐났다. 예닐곱살 꼬마부터 60세를 훌쩍 넘긴 노인까지 저마다 자신의 속도로 스케이팅을 즐겼다. 평일에는 하루 1000명, 겨울방학 등 성수기에는 하루 2000명이 이 링크를 이용한다. 지역 클럽팀 소속의 에이미(13), 펠리시아(14), 아눅(15)이 나란히 얼음을 지치다,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올림픽은 아직 모른다. 취미로 친구들과 재밌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 6~8세에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다. 펠리시아는 "여섯살 때부터 선수인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스케이트가 정말 멋있고 좋다"며 활짝 웃었다. 볼이 발그스레 달아오른 소녀들이 얼음판을 씽씽 질주했다. 링크 벽면에는 세계를 제패한 스벤 크라머, 밥 데용 등 '빙속 영웅'들의 이름이 빼곡이 새겨져 있었다.
위트레흐트(네덜란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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