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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동생, 오늘은 언니' 똘똘 뭉친 태극낭자, 기적을 노린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5-08-06 08:40


뭘해도 되는 집이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이 중국 우한에서 훨훨 날고 있다. '캐나다 여자월드컵 준우승국' 일본을 비롯해 중국, 북한이 함께 하는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는 월드컵 만큼이나 수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당초 1승 정도면 성공했다고 예상했지만, 태극낭자들은 중국과 일본을 차례로 격파하는 놀라운 경기력을 과시했다. '에이스' 지소연(첼시 레이디스) 박은선(이천대교)이 빠졌고, 심서연(이천대교) 마저 부상으로 중도귀국 했지만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그럴수록 더욱 똘똘 뭉쳤다. '원팀(One Team)'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언니들이 안되면 동생들이, 동생들이 힘을 내면 언니들이 해결사로 나선다.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가면 자기가 누구를 대신해서 뛰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내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죠. 이게 우리 팀의 힘인 것 같아요." '캡틴' 조소현(현대제철)의 말은 태극낭자들의 현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기특한 동생들

"동생들 정말 잘 하지 않았어요? 진짜 기특해요.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마운 하루였어요." 1일 중국전을 마치고 '맏언니' 김정미(31·현대제철)는 지나가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태극낭자들은 중국전을 앞두고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지난달 27일까지 WK리그를 치르고 곧바로 중국으로 넘어온 터라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윤 감독의 선택은 '막내라인'이었다. 1998년생인 조소현 전가을(현대제철) 권하늘(부산상무) 등 일명 '88라인'을 빼고 김혜리(25·현대제철) 강유미(24·화천KSPO) 이금민(21·서울시청) 등 어린 선수들로 베스트11을 꾸렸다. 선발로 나섰던 필드 플레이어 중 1980년대생은 3명 뿐이었다. 상대 중국은 캐나다월드컵 8강행을 이룬 정에 멤버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동생들은 강했다. 90분 동안 중국을 밀어붙였다. 후반 정신적 지주였던 심서연이 부상으로 쓰러지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전반 27분 터진 정설빈(현대제철)의 골을 잘지키며 귀중한 승리를 얻었다.

언니들은 그런 동생들이 자랑스러웠다. 벤치에 앉았던 전가을은 "정말 미안했다. 언니들이 도와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동생들이 나섰는데 못뛴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잘했다. 경기 내내 감동스러운 마음을 부여잡느라 혼났다"고 했다. 윤 감독도 "어린 선수들이 제 몫을 해줬다. 향후 여자축구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웃었다. 동생들의 활약은 언니들의 마음을 다잡게 했다. 전가을은 "동생들의 경기를 보면서 남은 두 경기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못 나왔던 게 오히려 새로운 한국 여자 축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나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화답한 언니들

"88언니들이 우리를 구해줬어요." 강유미의 말대로 한-일전을 뒤집은 것은 '88라인'이었다. 중국 보다 부담되는 한-일전, 윤 감독은 베테랑 카드를 꺼냈다. 조소현과 권하늘이 더블볼란치(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하지만 경기는 잘 풀리지 않았다. 중국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막내라인'들의 발이 무거웠다. 끝나고 탈진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중국전의 여파가 남았다.


하지만 언니들의 저력은 살아있었다. 호흡이 잘 맞지 않던 권하늘을 제외하고 조소현을 중원에 홀로 포진시킨 4-1-4-1 포메이션으로 바꿨다. 그러자 조소현의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0-1로 끌려가던 후반 9분 특유의 해결사 본능이 꿈틀거렸다. 조소현은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승부를 뒤집은 것은 전가을이었다. 후반 30분 교체투입된 전가을은 종료직전 절묘한 프리킥으로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언니들은 동생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조소현은 "지난 중국전에서 1988년생들이 쉬었다. 후배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서 이번에는 우리가 승리를 이끌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윤 감독은 "조소현 전가을이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안좋았지만, 좋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믿음에 보답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소현은 "우리가 여자라서 인지 언니, 동생 간의 사이가 좋다. 힘든 것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려는 모습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가을은 "우리가 정말 팀 분위기 좋다. 생활에서 보여준 면이 운동장에서 다 나온다.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쯤되면 누구도 두렵지 않다. 여자 대표팀은 2005년 이후 10년만의 동아시안컵 우승을 노리고 있다. 북한은 의심할 여지없는 이번 대회 최강이다. 동생들과 언니들이 힘을 합친 태극낭자라면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해볼만 하다.


우한(중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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