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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은 없었다.
선거 전 블래터 회장의 5선은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보였다. 포르투갈의 레전드 루이스 피구와 미카엘 판프라흐 네덜란드 축구협회장가 후보로 나섰지만, 모두 중도 사퇴했다. 알리 왕자가 끝까지 남아 블래터 회장의 대항마로 나섰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선거를 이틀 앞둔 28일, 초대형이슈가 터졌다.
미국이 스위스 당국과 공조해 부회장 2명을 포함해 FIFA 고위직 7명을 전격 체포한 것. 이들은 과거 20년간 FIFA의 광범위한 부패와 관련한 혐의를 받았다. 모두 블래터 회장의 측근이었다. 자금 운용과 집행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중용하는 '마피아 보스'식 블래터 회장의 스타일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선거를 앞두고 터진 악재에 블래터 회장의 5선이 위험하다는 전망이 이어졌다.
6개 대륙 중 가장 많은 54개국을 보유한 아프리카축구연맹 46개국이 FIFA에 가입된 아시아축구연맹이 블래터 회장에 대한 지지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두 대륙 지지도만 합쳐도 과반수에 가까이 되는 110개국이 된다. FIFA 회장 선거는 1국가 1투표가 원칙이다. 블래터 회장은 장기 집권을 위한 텃밭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공략에 나섰다. 블래터 회장은 1998년 취임 이래 '골 프로젝트' 등을 통한 축구 환경 개선과 남아공 월드컵 개최 등으로 아프리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축구 후진국인 아시아에 지원금 등을 보내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두 대륙을 손에 쥔 블래터 회장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5선에 성공했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5선에 성공한 블래터 회장은 인터뷰에서 "나는 최근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FIFA가 더 좋은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다"며 "무엇인지 당장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임기 첫날부터 FIFA를 개혁할 깜짝 놀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태 진화를 위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블래터 회장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중도 퇴진한 피구는 SNS를 통해 '블래터가 며칠 안에 그만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판 프라흐 회장도 "블래터는 4년 전에도 개혁을 약속했다. 그가 변화를 이끌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식물 회장, 더 나아가 중도 퇴진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단 블래터 회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상처를 입었다. 4년 전 선거 때 단독 출마해서 186표의 몰표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그를 지지하던 많은 표가 이탈했다. 블래터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럽축구연맹의 계속된 공세는 부담스럽다. 유럽축구연맹은 블래터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장 찬반 투표를 위해 총회를 소집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어, 러시아 월드컵이 '반쪽 대회'로 치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럽축구연맹의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FIFA의 가장 큰 돈줄인 월드컵의 위상은 크게 추락할 전망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문제도 정리해야 한다. FIFA는 카타르 월드컵을 논란 끝에 겨울에 개최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뇌물스캔들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레그 다이크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은 31일 인터뷰에서 "부패행위가 밝혀진다면 카타르 월드컵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이 계속해서 수사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도 블래터 회장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미국 사정당국은 블래터 회장이 재선에 성공하는 날, "추가 기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리처드 웨버 미 연방국세청(IRS) 범죄수사국장은 "미 법무부가 기소 방침을 밝힌 14명 외에도 FIFA나 축구계 관계자들이 비리 혐의로 더 사법처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최종 계획은 결국 블래터 회장에 대한 수사다. 블래터 회장은 카타르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사의 칼날이 블래터 회장까지 이어질 경우 불명예 퇴진할 가능성이 높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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