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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효 감독의 쓴소리, 부산 선수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다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5-05-05 17:19



윤성효 부산 감독은 지난달 29일 FA컵 32강에서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강원FC에 덜미를 잡혀 K리그 클래식의 자존심을 구겼다. 패인으로 선수들의 나약한 정신력을 꼽았다. "나사가 풀렸었죠." 윤 감독은 그날 패배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애정어린 쓴소리를 했다. "프로 선수에 대한 자세가 부족하다. 정신차려라."

부산 선수들은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자발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클럽하우스가 아닌 외부에서 생활하던 기혼자들이 합숙을 자청했다. 윤 감독은 "선수들이 반성하는 차원에서 합숙도하고 비디오 미팅도 스스로 하더라"고 전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려는 선수들의 의지에 윤 감독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스스로 부진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은 희망을 의미한다."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포항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포항과의 2015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원정 경기. 사실 고비였다. 부산은 3월 7일 대전과의 시즌 개막전 승리 이후 59일간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울산과 1대1 무승부를 거두면서 다행히 5연패에서 벗어났지만, 시즌 초반 순위 경쟁에서 크게 밀려있었다. 윤 감독은 "이 고비만 잘 넘겨준다면 자신감을 얻어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감독이 택한 묘수는 스쿼드 변화였다. 중앙 수비수 닐손주니어만 빼고 웨슬리와 베르손 등 외국인 공격수를 출전 명단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윤 감독은 "웨슬리는 부상이고, 베르손은 컨디션 난조로 명단에서 뺐다"고 설명했다. 이날 황선홍 포항 감독은 부산의 베스트 11을 보고 다소 놀란 눈치였다. 황 감독은 "웨슬리와 베르손을 출전 명단에서 뺀 걸 보면 팀 내적으로 강화하고 대응하겠다는 전략인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황 감독도 선수들에게 강한 정신력을 강조했다. "기술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주문했다. 부산이 FA컵 패배 이후 강하게 나올 것 같다. 냉정하게 플레이를 해야 할 때다.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뚜껑이 열렸다. 양팀 사령탑의 예상이 적중했다. 경기 초반부터 선수들의 팽팽한 기싸움이 눈에 띄였다. 변수는 경기 초반 나왔다. 부산의 닐손주니어가 포항 선수와의 충돌로 뇌진탕 증세를 보이면서 교체됐다. 부산은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윤 감독도 당황했지만, 용병술이 적중했다. 닐손주니어 대신 투입된 노행석이 전반 16분 주세종의 날카로운 프리킥을 헤딩골로 연결시켰다. 부산의 젊은 선수들은 똘똘 뭉쳐 있었다. 세밀함과 빠른 패스워크를 갖춘 포항에 조직력 대결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한 발 더 뛰었다. 공격시 스리백을 유지하고 수비시 양쪽 윙백이 내려와 파이브백을 형성해 포항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냈다. 승부는 역시 집중력에서 갈렸다. 후반 21분 포항 수비수 김원일이 걷어낸 공이 부산 공격수 한지호의 몸에 맞고 흘렀다. 한지호는 공을 잡고 돌파를 시도한 뒤 결승골을 폭발시켰다. 포항은 후반 39분 박성호가 추격골을 터뜨렸지만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데 실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윤 감독의 얼굴에는 오랜 만에 웃음꽃이 폈다. 윤 감독은 "야단을 치더라도 선수들이 못 느끼면 무용지물이다. 선수들 스스로 승리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노행석의 투입이 전화위복이었다. 경기 운영은 잘 해나갔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실수가 나오긴 했다. 지난 시즌 대구에 있다가 올해 부산에 왔는데 좋아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특유의 입담도 잊지 않았다. 윤 감독은 "2013년 포항의 우승을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냐. 이 경기는 포항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윤 감독의 쓴소리와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이 만들어낸 포항전 승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값졌다.

포항=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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