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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선발에 베스트11' 에닝요 묶은 '전남유스'이슬찬 찬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4-29 18:07 | 최종수정 2015-04-30 08:13



#. 지난 19일 K리그 클래식 7라운드 부산전(2대0 승) 직후 왼쪽 풀백 현영민이 경고누적으로 전북전 결장이 확정됐다. 노상래 전남 감독이 말했다. "히든카드가 있다. 아주 '똘망진' 선수인데, 틀림없이 잘해줄 것이다."

#. "전반 에닝요, 후반 한교원, 전북의 이 두 선수를 번갈아가면서 완벽하게 맡을 수비수가 국내에 몇이나 있을까요? '작은 거인' 이슬찬이 해냈네요." 전남이 전북을 2대1로 이기며, 22경기 무패 기록을 멈춰세운 날, 리그 686경기에 빛나는 레전드, '병지삼촌' 김병지는 '1993년생 수비수' 이슬찬을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꼽았다.

26일 K리그 클래식 8라운드 전북전, '전남유스' 이슬찬(22)이 왼쪽 풀백으로 나섰다. 2012년 프로에 입성한 '프로 4년차' 이슬찬의 선발 데뷔전이었다. 4년간 9경기를 모두 교체로 나섰다. 노 감독의 히든 카드, 이슬찬은 프로 10번째 경기, 가장 중요한 전북과의 일전에서 처음으로 선발을 명받았다.

순천중앙초-광양제철중고 출신은 이슬찬은 광양에서 나고자란 '전남 키드'다. 광양전용구장 맞은편 아파트에 살면서, 광양제철소에 다니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부터 광양전용구장을 드나들며 노상래 감독과 전남의 전성기를 목도했다. 지동원, 김영욱, 이종호 등 내로라하는 전남유스 선배들과 함께 꿈을 키웠다. 이슬찬은 "일주일전 준비하라는 지시를 듣고, 동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열심히 준비했다. '병지삼촌',(현)영민이형, (최)효진이형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오로지 전북전 생각뿐이었다. 경기 전날 밤엔 전북의 '선발 명단' 예지몽까지 꿨다.

데뷔후 4년의 기다림은 깊었다. 처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선택해준 감독과 팀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펼쳐보였다. 1m72 작은 키지만 빠른 발과 강한 체력을 갖춘 이슬찬은 노 감독의 말대로 똘똘하고 야무졌다. "떨린다기보다는 설레였다 홈에서 첫 선발경기니까…"라며 웃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 더운 날씨속에 에닝요, 한교원을 한발 앞서 압박하고 막아냈다. 자신의 임무를 200% 수행했다. 에닝요와의 맞대결에 대해 "우승도 많이 하고 경험이 많은 선수인 만큼 클래스가 다른 선수였다"고 했다. 그 에닝요를 어떻게 묶었느냐는 말에 "더 많이, 한발 더 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뺏고, 막고, 더 많이 뛰는 것은 자신있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프로 무대에서 90분 풀타임 출전은 처음이었다. 종료 휘슬이 울릴 무렵 쥐가 올라왔지만, 티내지 않았다.

전북전 홈 승리는 프로 데뷔후 최고의 순간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첫 선발에, 홈에서 전북을 잡고… 프로 데뷔 후 가장 기쁜 날이었다." 꿈을 묻는 질문엔 겸손했다. 좌우 사이드백을 모두 소화하는 이슬찬의 자리에는 현영민, 최효진 등 국가대표 출신 베테랑 선배들이 있다. "올시즌 내 목표는 10경기, 선발로 1경기 이상 뛰는 것이었다. 선발의 꿈은 이뤄졌다. 아직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다. '1차 목표'를 달성했으니 차차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스물두살의 어린 선수에게 4년을 버텨온, 비범한 내공이 전해졌다.


29일 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이슬찬은 첫 선발에서 첫 베스트11에 올랐다. 클래식 12개 팀 왼쪽 풀백 가운데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는 뜻이다. 이슬찬은 "제가 잘한 것보다 우리팀 형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잘해주셔서 뽑힌 것같다"고 했다. "다음에 또 언제 경기에 출전할지 모르지만,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팀에 보탬이 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롤모델'에서 '한솥밥 선배'가 된 최효진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슬찬의 원래 포지션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10살 위 대선배 최효진은 그의 롤모델이었다. "효진이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팬이었고 닮고 싶은 선수였다. 올시즌 효진이형이 전남에 오셔서 좋은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신다. 포지션이 겹친다는 걱정보다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이날 이슬찬은 '롤모델' 최효진과 나란히 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다. "효진이형과 함께 뛴 첫 선발경기라서 더 좋은 추억이 될 것같다. 효진이형이랑 같이 뛰었고, 전북을 이겼고, 함께 베스트 11이 됐다"며 웃었다.


'전남 유스' 이슬찬은 실력뿐 아니라 인성을 갖춘 선수다. 자신이 나고, 자신을 키워준 뿌리, 광양에 대한 고마움을 항시 잊지 않고 있다. 프로에 데뷔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째 광양시사랑나눔복지재단에 매년 이웃사랑실천 성금 200만원을 남몰래 꾸준히 기탁해왔다. 각박한 승부의 세계에서 데뷔 때부터 주변에 감사하는 마음,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기다림을 묵묵히 감내하고 마침내 빛나기 시작한 이슬찬의 이름 세글자가 문득 궁금해졌다. "'슬'기롭고 '찬'란하게 빛나라는 뜻의 한글"이라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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