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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생명력과 소박한 아름다움, 들꽃이 지닌 미학이다. 그러나 세상은 눈길을 주는 데 인색하다.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들꽃이 수두룩하다. 이름이 생기기까지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축구판은 보수적이다. 무명의 선수가 지도자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만큼 어렵다. 전직이 체육교사인 조제 무리뉴 첼시 감독(포르투갈)이 한국 축구계에서 탄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유공(1987~1995년)과 수원(1996~1997년)에서 266경기에 출전, 36골-21도움을 기록했다. 소리는 없었지만 성실한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A급 지도자의 보증수표인 국가대표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엄청난 아킬레스건이었다.
더 고독하게 세상과 맞섰다. 단 한 차례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한 우물만 팠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선수들에게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가갔다. 혼란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정확하게 맥을 짚어가며 조련했다.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2009년 FIFA U-17 월드컵 8강, 2011년 U-20 월드컵 16강, 2013년 U-20 월드컵 8강으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성역'은 존재했다. 누가 보더라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사령탑은 그의 몫이었다. 제도권은 다시 그에게 의문부호를 달았다. 지지와 반지지 세력으로 나뉘었다. 감독 선임을 놓고 충돌이 있었다. 돌고 돌아 접점을 찾았다. 2013년 11월 그는 인천아시안게임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1년 단기계약이었다. 아시안게임 성적을 지켜본 뒤 계약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뜻이었다. 반전은 화려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 결승에 오르기까지 비난 여론도 팽배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광종 꽃'을 피웠다. 14년 만에 탄생한 '무명의 빛'이었다. '제2의 이광종'을 꿈꾸는 음지의 지도자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더 이상 이견은 물론 논란도 없었다. 이 감독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대표팀에 무혈입성했다. 자만하지 않았다. 들뜨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 겸손하게 올림픽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신의 시샘이 가혹해도 너무 가혹했다. 이 감독은 현재 병상에 누워 있다. 급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다. 하지만 이 감독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처절했길래, 이같은 병마가 덮쳤을까. 아픔이 몰려온다.
감독은 외롭고, 고독한 자리다. 매 순간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해소할 길도 많지 않다. 이 감독은 웬만해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스스로 삼킨다. 올림픽이라는 더 큰 무대를 앞두고 면역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듯 하다.
치료 기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감독이기에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분명 그라운드에 다시 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온 그라운드의 삶은 '투쟁의 역사'였다. 그는 이겼고, 이 자리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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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도하고 있다. '감독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