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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이청용의 잃어버린 3년, EPL에서 다시 꽃핀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2-04 06:53


이청용(왼쪽). ⓒAFPBBNews = News1

2012년 5월 14일(이하 한국시각), 갓 부상에서 회복한 이청용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이별한 날이다.

EPL은 날고 긴다는 지구촌 최고 선수들의 경연장이다. 대한민국에서 날아 온 '영건'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어느 선수보다 미래가 밝았다. 그러나 2011월 7월 31일, 그의 시계가 폭풍에 휩싸였다. 2011~2012시즌 프리시즌 경기에서 오른 정강이 하단 3분의 1지점의 경골과 비골이 골절됐다. 선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통증과 공포가 그를 휘감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시즌 종료 2경기를 앞두고 복귀했지만 운명은 더 야속했다. 그 날 2부 리그(챔피언십) 강등의 비운을 경험했다.

2009~2010, 2010~2011시즌, 이청용의 성장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컸다. FC서울에서 뛰던 그는 2009년 8월 볼턴에 둥지를 틀었다. 21세의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220만파운드의 이적료(약 37억원)에 물음표가 달렸다. 과연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달 뒤인 9월 26일 EPL 6라운드 버밍엄 시티전(2대1 승)에서 천금같은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찼다.

기자는 2010년 3월 이청용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현재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당시는 밥, 빨래, 설거지 등을 대부분 손수 해결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루한 삶의 연속이었다. '축구 감옥'에 갇혀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경기장에서 푼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볼턴의 특별한 눈길이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고 했다. 볼턴 구단이 그랬다. 선덜랜드 원정길에는 칙사대접을 받았다. 영국 축구계에서도 유명인사인 필 가트사이드 볼턴 회장이 직접 운전대를 잡은 승용차에 동승했다. 그의 입가에서는 '이청용 찬가'가 울려퍼졌다. "이청용의 영입은 볼턴의 축복이다. 첫 시즌에 이렇게 잘 할지 솔직히 몰랐다."

현실이 그랬다. 이청용은 첫 시즌 볼턴이 45경기 가운데 무려 40경기(선발 31경기, 교체 9경기)에 출격했다. 5골-8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시즌 볼턴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비롯해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 '올해의 최고 신입 선수상', '올해의 톱3'까지 수상하며 4관왕의 대위업을 달성했다.

2010~2011시즌에는 '1000만 파운드(약 186억원)의 가치를 지닌 선수'라는 극찬도 받았다. 하지만 부상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2부 리그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탈출, 부활했지만 거친 2부 리그에서는 좀처럼 빛이 보이지 않았다. 볼턴은 이청용을 EPL 승격을 위한 핵심전력으로 분류했다. 둥지를 옮길 수도 없었다. 2012~2013, 2013~2014시즌, 힘겨운 여정 끝에 EPL 승격에 실패했다.

과여 이대로 끝일까. 영원한 아픔은 없었다. 2015년 2월 3일, 드디어 새 날이 열렸다. 길고 길었던 2부 리그의 터널에서 탈출했다. 2014~2015시즌 겨울이적시장에서 EPL 복귀가 성사됐다. 연고가 런던인 크리스털 팰리스로의 이적이 확정됐다. 계약기간은 3년으로 2018년까지다. 지난달 호주아시안컵에서의 부상으로 이적이 불발될 수도 있었다. 살얼음판의 연속이었지만 이적 시장 마감 직전 런던 입성을 매듭지었다.


어찌보면 잃어버린 3년이었다. 그도 EPL에 첫 입성했을 때 2부 리그에서 두 시즌 반을 보낼 지 몰랐다.

나이도 어느덧 서른 살을 바라보고 있다. 27세다. 기량은 이미 검증돼 있다. 개인기와 스피드, 반박자 빠른 패스는 어느 무대에서도 통한다. 성실함은 타고났다. 어느 감독이 지휘하던 늘 한결같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킨다.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있다. 이제부터는 부상이 비켜가는 '여우같은 플레이'가 요구된다. 저돌적인 돌파에는 법칙이 있다. 역이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청용은 수비수들의 자존심을 긁지 않고도 충분히 벽을 허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적극 활용해야 한다.

고국 팬들은 즐겁다. 이제부터는 안방에서 이청용의 플레이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털 팰리스가 종착역은 아닐 것이다. 이청용은 빅클럽으로 한 단계 더 점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비상이 기대된다. EPL에서 다시 이청용의 꽃이 핀다.
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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