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단독인터뷰]정성룡의 다짐 "최선을 다 할 수 없을 때까지"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12-04 07:19


수원삼성 골키퍼 정성룡 인터뷰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11.26/

정성룡(29·수원)과의 인터뷰를 위해 꽤 많은 질문을 준비했다. 6개월간의 인터뷰 요청 끝에 얻어낸 소중한 시간이었다. 묻고 싶은 것만 해도 수백가지가 됐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경기도 화성 수원클럽하우스로 향하면서 질문지를 정리해나갔다.

차에서 내렸을 때, 질문지를 찢었다. 뻔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상투적인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정성룡의 솔직한 마음이 듣고 싶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그리고 그 이후 심경에 대한 정성룡 본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 대한민국과 알제리의 경기가 23일 (한국시간) 포르투 알레그레의 에스타디오 베이라리오 경기장에서 열렸다. 골키퍼 정성룡이 알제리에게 세번째 골을 허용하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브라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6.23/
퐈이야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아픔이었다. 한국은 1무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경기에서 5실점한 골키퍼는 설자리가 없었다. 정성룡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성룡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자신의 SNS에 '한국에서 봐요. 월드컵 기간 아니 언제나 응원해주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더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 다 같이 퐈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더 큰 비난이 쏟아졌다. 거기에 대해 물었다. 정성룡은 한동안 생각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죠. 그런데 그것보다 계속 너무 미안했어요. 같이 호흡을 맞췄던 감독님이나 코칭 스태프들, 선수들에게 미안했어요. 내가 하나라도 더 막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맨날 그 생각이에요. 결국 제가 그만큼 부족했죠."

말을 이었다. '퐈이야'에 대한 부분이었다. SNS사건 이후 '퐈이야'는 화두가 됐다. 7월 12일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에서 '퐈이야'가 등장했다. 서울 서포터들은 정성룡이 골킥을 할 때마다 '퐈이야'를 외쳤다. 경기 후 정성룡은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퐈이야를 격려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파만파였다. 3분 남짓 인터뷰 중 이 말만 부각됐다. 일부 축구팬들은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제대로 된 입장을 듣기로 했다.

"SNS에 올린 것은 제가 경솔했어요. 물론 의미는 그게 아닌 거 다 아시잖아요. 축구선수로서 이번 아픔을 거울삼아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였어요. 그래도 민감한 시기에 그런 글을 올린 것은 생각이 짧았어요. 제 실수입니다."

정성룡은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면서 그는 또박또박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의 2014 K리그 클래식 경기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수원 골키퍼 정성룡이 울산 서용덕의 위협적인 공격을 펀칭으로 막아내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cjg@sportschosun.com/2014.09.10/

최선

아픔은 정성룡을 자라게 했다. 그동안 마음 속 깊이 자고있던 '초심'을 깨웠다. 훈련에만 집중했다.

"일단 운동만 생각하기로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그냥 주저앉을까 싶기도 했어요. 제가 나이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도 했겠죠. 그런데 운동에 매진하다보니까 다른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우리 수원의 선생님들(코칭스태프), 동료 선수들,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다시 힘이 생겼어요. 예전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했을 때 마음속에서 품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어요. 바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어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정성룡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2005년 경북 포항 송라에 있는 포항클럽하우스였다. 당시 정성룡은 김병지(현 전남)에게 밀려 단 1경기도 뛰지 못하던 상태였다. 스무살의 정성룡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입대 생각도 했었단다. 그 때 정성룡은 "힘들기는 해요. 하지만 땀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끝까지 해보려고요"라고 했다. 10년전 정성룡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나왔다. 정성룡은 말을 이었다.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다보니 주위는 신경 안 쓰게 됐어요. 주위를 신경쓰면 오히려 운동장에 못나갔겠죠. 다른 거 생각 안하고 내 플레이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어 그는 "최선을 다해 운동하고 경기에 뛰고, 다시 기량이 좋아지니까 즐겁더라. 그러다보니 마음 속에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자'였다"며 "만약 내가 최선을 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바로 그날이 은퇴할 때다. 그게 31살이든, 38살이든 중요치 않다.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뛸거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은퇴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성룡은 11월 A대표팀에 복귀했다. 월드컵 후 첫 승선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정성룡의 경기를 꾸준히 지켜봤다. 11월 14일 요르단전에서는 골문을 지켰다. 하지만 정작 메인 경기였던 18일 이란전에서는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서는 이제 정성룡의 시대는 갔다는 이야기가 맴돌았다.

"3번이니 1번이니 하는 문제는 제가 판단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말을 아꼈다. "그것보다는 대표팀 선발 자체가 큰 영광이었어요. 부족할텐데 저를 뽑아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태극마크의 무게가 그 무엇보다 무거운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 밖에 없어요. 이후에는 다시 뽑힐지 안 뽑힐지 모르겠지만 제가 할 일은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수원과 서울의 올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가 펼쳐졌다. 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 서울의 K리그 클래식 2014 35라운드 경기에서 수원 골키퍼 정성룡이 펀칭을 하고 있다.
수원이 역대전적에서 31승 16무 24패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 5경기에서는 서울이 3승 2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11.09/


정성룡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서정원 수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서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고 정성룡이 입은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다. 나라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룡이는 달랐다. 미친듯이 훈련하더라. 그러더니 바로 제 컨디션을 찾더라. 정말 착하고 순박한 친구다. 이게 바로 땀의 힘"이라고 말했다.

정성룡은 전국민적인 비난을 받았다.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무차별적인 비난이었다. 아마 일반인이라면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6개월이 지났다. 정성룡은 비난을 이겨내고 다시 우뚝 섰다. 박수받아 마땅하다.

아직도 정성룡을 근거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월드컵 후 정성룡이 흘린 땀의 가치까지 부인하지 말자. 그의 땀은 키보드 혹은 세치혀로 조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땀은 '최선의 기적'을 보여주는 증거다.
화성=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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