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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전북 감독은 인터뷰 내내 이동국과 김남일을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완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2005년 8월 24일 전북-포항전이 최 감독의 전북 데뷔전이었다. 그런데 이동국이 포항 소속으로 골을 넣었더라.
-차두리는 '노장이 잘 못하면 짐이 된다'는 말을 하더라. 두 선수 모두 노장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 같은데,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김남일(이하 김)=선수가 가장 힘들 때는 경기에 나서지 못할 때다. 노장을 떠나서 모든 선수가 느끼는 문제다. 나이 많은 선수들에겐 특히 상실감이 더 크다. 어렵게 선수생활을 해 여기까지 왔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일 때나, 선수들을 잡아줘야 할 입장에서 그러지 못하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브라질월드컵 전까지 두 번의 부상을 한 뒤부터는 축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더 뛰어야 할 지 고민이 많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앞으로 진로에 대해 많은 생각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감독님이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았을 것이다. 선수는 경기장에 있을 때가 가장 멋있고 가치를 느끼는 때인 것 같다.
이동국(이하 이)=(차)두리는 (김)남일이형에 비해 젊은 편인데 노장이라고 하니... 남일이형은 한창 때다(웃음). 나이 든 선수들은 팀이 잘 될 때는 큰 부담이 없는데, 연패 등 부진에 빠지면 괜히 '나때문인가'하는 부담을 갖는다. 올해 좋은 경기력 속에 우승했지만, 분명 위기도 있었다. 그 때마다 많은 부담을 가지면서 경기를 했다. 그 시기를 이겨내고 우승하니 다 잊게 되는 것 같다.
최=앞으로 김남일이 못 찾아오게 방문을 잠가야 할 것 같다(웃음). 본인이 자꾸 꾀를 쓰면 막을 방법이 없으니 방문을 잠그겠다. 3번 더 우승한 뒤 놔주겠다(웃음). 긴 시즌을 이겨내려면 베테랑 선수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노장들은 나이를 먹으면 부상 회복이 어려워지고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김남일처럼 늦게 팀에 이적하게 되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우승하는데 큰 역할을 해줬다. 경기장 안에서 필요한 것도 있지만, 훈련장에서 팀을 이끌어주는 부분도 무시 못한다. 경기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다.
-최 감독은 계속 함께 뛰고 싶어 하는데, 김남일 본인의 생각은.
김=말씀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누구보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주변에서 다음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시는데, 사실 썩 기분이 좋진 않다. 그 부분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막상 듣는 입장에선 유쾌하진 않다. 감독님 말씀이 큰 힘이 된다. 팀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최=그래서 뛰겠다는 거냐, 말겠다는거냐. 훈련 나가기 힘들어지면 내가 지게에 지고 데리고 가겠다.
김=몇년이 될 지는 몰라도 뛸 수 있는데까지 뛰겠다(웃음).
-노장 선수들이 전북에서 부활할 수 있는 이유는
이=체력이나 기량 관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시간만 나면 회복실에서 살 정도다. 마음 편하게 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
김=나이를 먹을 때마다 '낙엽같다'는 말을 한다. 나는 낭떠러지에서 지푸라기를 잡고 있다. 하지만 후배들이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다. 후배들이 옆에 있는 것 만으로 의지가 된다. 후배들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고맙게 생각한다.
-두 선수 같은 베테랑이 한 팀에서 활약하기도 쉽지 않다. 함께 뛰어 본 소감은
김남일(이하 김)=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동국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고 잘하는 선수다. 해결을 해줘야 할 상황에선 항상 해줬고, 지금도 그렇다. 항상 믿음이 있다.
이동국(이하 이)=남일이형은 운동만 끝나면 무릎, 발목 여기저기 만진다. 농담으로 '고쳐서 다시 쓰지 말고 은퇴하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이 알아서 잘 관리한다(웃음). 그런 몸관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남일이 있는 것 같다. 경기장에서의 묵직함은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팀 밸런스, 분위기 모두 두말할 것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다. 40세 이상까지 뛸 수 있다고 본다.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나.
이=중 1때 남일이형네 팀과 연습경기를 했다. 나는 밖에서 지켜봤다. 중3 형이 고3, 대학에서 뛰어도 될 정도로 잘 뛰었다.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공 한번 제대로 못 잡고 대패했다. 남일이형은 그때 멤버 중에서도 유일하게 지금까지 선수로 뛰고 있다. 그런데 지금 키가 그때랑 똑같다(웃음).
김=한양대 시절 포항과 연습경기를 한 적이 있다. 포항에 이동국이라는 선수가 왔다는 걸 말로만 들었던 때였다. 우연찮게 연습경기에서 내가 마크맨으로 나섰다. 공중볼을 잡으려는데 (이)동국이 가슴에서 볼이 사라지더라. '뭐지'하는 생각이었다.
이=내가 가슴으로 볼을 숨기는 기술까지 갖고 있는 줄 몰랐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웃음).
-올해 심심찮게 골을 넣었는데, 3경기가 남아 있는데 골을 더 넣고 싶지 않나.
김=동국이가 몇 골 넣느냐고 말해서 더는 못 넣을 것 같다고 말했다(웃음). 내가 차는게 아니라 공이 와서 맞는 골들이었다. 골 욕심을 내 스스로 내진 않는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기마다 집중한다는 생각 뿐이다. 그런데 동국이가 골 넣고 세리머니 하는 게 부럽긴 하다. 나도 '저렇게 해봐야 겠다' 생각은 해봤는데 역시 무리였다(웃음).
-축구계에선 '이동국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이=주변에 좋은 선수들이 많을 뿐이다. 나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동료들이 메워주는 것 같다. 옆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점을 살려주기 때문에 그런 평을 들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좋은 기량을 보여주려면 반복적인 훈련 밖에 답이 없다.
-아들이 테니스 선수로 활약 중이다.
이=좋아해서 시키기는 하는데 신동은 아닌듯 하다(웃음). 테니스를 좋아하고 승부욕이 있다. 운동한 뒤부터 몸이 건강해지고 밥을 잘 먹어 아버지 입장에선 만족스럽다. 축구는 내가 재능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볼 것 같다. 그걸 보고 판단해 볼 생각이다.
-이동국이 많은 아이들을 두고 있다. 지켜보면 둘째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생각만 하고 있는데 잘 안된다. 동국이한테 농담으로 '키우기 버거우면 임대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한다(웃음).
-2014년 행복지수를 표현한다면.
김=나는 100이다. 아직 트로피를 못 들었지만, 행복을 감출 수 없을 정도다. 이런 마음은 올해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이=내년은 없다는 것인가.
김= 지금 심정이 그렇다는 거다(웃음).
이=나는 (시상식이 열릴) 포항전에서 100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가슴에 달린 별 두 개가 허전했는데, 이제 3개다. 리그 최종전에서 별 3개가 달린 유니폼(전북은 리그 최종전에서 이듬해 입을 새 유니폼을 공개한다)을 입고 뛸 땐 행복지수가 102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내가 뛰진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
-3년 전 축구인생을 경기에 비유하면 지고 있는 연장전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김=나는 아마 페널티킥을 차고 있지 않을까(웃음). 그래도 좋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2-0 정도로 앞서고 있다고 본다. 솔직히 여러가지 고민은 많이 하고 있다.
이=매순간 처음 경기장에 들어가는 설렘을 갖고자 한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그 기분을 가져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