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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훈은 2014년 8월 3일을 잊지 못한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18라운드 홈경기. 2-1로 앞서던 후반 22분 산토스를 대신해 들어갔다. 들어갈 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몸상태도 최상이었다. 투입 19분 뒤 답이 나왔다. 날카로운 패스로 로저의 골을 도왔다. 그대로 서정원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다. 6분 뒤에는 '큰 일'을 냈다. 염기훈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을 박았다. K-리그 데뷔골이었다. 팬들앞으로 달려갔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수원 엠블럼에 키스했다. 1만7000여 수원팬들은 '권창훈'을 연호했다.
권창훈은 당찼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보고 축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영희초 축구부에 들었다. 기량이 급성장했다. 4학년말 영희초 축구부가 해체했다. 권창훈은 양전초등학교를 거쳐 축구 명문 중동중으로 진학했다.
수원과의 인연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09년 여름에 시작됐다. 권창훈은 그해 2월 열렸던 춘계중등연맹전에서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중동중 운동장은 각 고등학교의 감독들과 프로 유스팀 스카우트들로 가득 찼다. 권창훈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어느 날이었다. 훈련을 마친 권창훈은 한 스카우트에게 다가갔다. 수원 조재민 스카우트 앞에 섰다. "저, 매탄고(수원 유스팀)에 가고 싶습니다.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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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탄고에서 권창훈은 거칠 것이 없었다. 초반 적응기를 넘긴 이후 3년 내내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3학년 때인 2012년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고교 챌린지리그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당연히 MVP도 권창훈의 차지였다. 권창훈에게는 언제나 '고교 랭킹 1위'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대표팀도 권창훈을 주목했다. 2012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19세이하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이듬해 권창훈은 모두의 기대 속에 수원에 입단했다. 6월 터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이하 월드컵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한국은 8강까지 올랐다. 프로 1년차 권창훈의 앞날에는 레드카펫이 깔려있는 듯 했다.
하지만 터키에 다녀온 뒤 추락이 시작됐다. K-리그 클래식은 아마추어 무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권창훈의 포지션에는 쟁쟁한 선배들 뿐이었다. 섀도 스트라이커로는 산토스가 버티고 있었다. 2선 미드필더에는 김두현과 오장은, 이용래가 뛰고 있었다. 왼쪽 측면 경쟁자는 염기훈이었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클래식 8경기에 나섰다. 교체 출전이 7번, 선발 출전이 1번이었다. 1도움을 올리는데 그쳤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조금 나았다. 2경기에 나갔다. 귀저우 런허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에서 프로 데뷔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미 탈락이 확정된 뒤라 기쁘지 않았다. FA컵 1경기에도 나섰다. 프로 첫해 기록은 총 11경기 출전 1골-1도움이었다. 더 이상 화려했던 권창훈은 없었다.
2014년, 권창훈은 조바심이 났다. 지난 시즌의 굴욕을 만회하고 싶었다. 무리하게 몸 끌어올리기를 시도했다. 불운이 찾아왔다. 다쳤다. 시즌 시작 직전 연습경기를 뛰다가 오른쪽 무릎 내측 인대가 파열됐다. 상반기를 통째로 날렸다.
희망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법이 달랐다.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조급함에 무리한 재활을 했다가 더욱 악화될 수 있었다. 구단 의무팀과 상의해 조금씩 몸을 추스렸다. 권창훈은 "완벽하게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재활 훈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도 가졌다. "부상으로 쉬는 동안 내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했다"는 권창훈은 "불필요한 드리블 등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기회가 다시 왔다. 월드컵 앞둔 5월 PSV에인트호번과의 친선전에서 후반 교체투입됐다. 김대경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자신감이 생겼다. 7월 5일 경남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다. 결국 3일 포항전에서 K-리그 첫 골이 터졌다. 권창훈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골이었다. 최선을 다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시간을 극복해낸 권창훈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제 부담을 털었다. 선수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몫을 다하는 등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쌓다보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고 기대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