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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알제리, 백발 노장의 '눈물'에 담긴 것

임기태 기자

기사입력 2014-07-01 10:20



백발 노장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120분 연장 혈투를 끝낸 할릴호지치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울었다. 알제리가 1일(한국시각)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의 베이라히우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전에서 독일에 2-1로 패했다. 전력 차가 너무 크다는 뭇사람의 평가에도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지던 투혼,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모습은 홍명보호가 아닌 알제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조별예선 러시아전에서도 그랬듯, 아래로 눌러앉아 라인 간 간격을 바짝 좁혔고, 2선까지 수비에 착실히 가담하며 수비 블록을 늘려갔다. 물러난 듯하면서도 독일의 역삼각형 중원을 압박하던 탄력적인 운영은 선제골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될 전망이었다. 고무줄을 탱탱하게 잡아당긴 긴장감은 기록상으로도 잘 드러난다. 두껍게 쌓은 알제리의 수비벽에 독일은 후방에서 볼을 돌렸고, 60% 이상의 점유율에 총 패스 754개를 기록한다(알제리는 316개). 86%에 달한 패스 성공률은 개개인의 능력치가 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래 진영에서 백, 횡패스를 많이 주고받았다는 얘기와도 연관이 있다.

독일은 전반 초반부터 역동적인 스위칭을 가동한다. 4-1-4-1 중 중앙 수비 앞 컨트롤타워 '1' 자리엔 여러 선수가 드나들었다. 람뿐 아니라 크로스나 슈바인슈타이거가 자리를 메웠고, 때로는 외질과 괴체까지 가담했다. 그럼에도 가시적인 성과 없이 오히려 상대의 역습에 고전한다. 알제리는 볼을 뺏어낸 뒤 다음 장면을 전개하는 장면에 완벽한 준비가 돼 있었다. 볼 소유권을 쥔 이들이 상대 진영으로 진입하는 데 소요한 시간은 평균 3~4초 내외. 포지션 불문하고 볼 터치를 최소화한 '전진패스→리턴패스→롱패스' 패턴은 상당히 매서웠다. 홍명보호를 무너뜨린 공략법과도 유사했다.

독일은 보아텡-메르테사커의 중앙 수비 라인이 중앙선 위까지 전진해 있었다. 이들이 활용할 상대 뒷공간은 20m 내외가 전부. 이에 반해 알제리엔 50m 이상의 공간이 주어졌다. 볼을 많이 잡지 못했음에도 '최소 기회, 최대 효과'의 경제성을 발휘했고, 상대 페널티박스 내로 진입하는 횟수를 빠르게 높여갔다. 뒷공간으로 뛰어든 슬리마니는 준수한 스피드에 힘이 좋아 어깨 싸움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다. 다만 김영권-홍정호 라인을 곤욕스럽게 한 파괴력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독일 수비진과의 경합에서 확실히 앞선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고, 후반 들어 체력적으로 지치며 이 패턴도 힘을 잃었다.

여기엔 골키퍼 노이어의 전진 또한 크게 작용했다. 노이어는 아예 위로 올라와 중앙 수비와의 거리 좁혔고. 필드 플레이어처럼 최종 수비수 역할을 했다. 수비진의 백패스를 받고, 뒷공간을 커버할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불안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알제리의 전방 압박에 쫓긴 수비의 백패스는 바운드가 심했고, 정지한 상황에서 앞으로 나오며 이를 처리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러나 고삐 풀린 망아지일 수도 있었던 이 선수의 폭넓은 수비 범위가 결정적인 상황을 여러 차례 막아냈다. 히트맵을 통해 봤을 때 상대 골키퍼 음볼리보다도 월등히 넓은 ?동 범위를 나타냈고, 더불어 하나의 패스 축 구실을 하며 팀을 도왔다.

독일이 활로를 찾은 건 중거리 슈팅에서였다. 전방 플레이메이킹은 상대에 둘러싸였고, 양 측면 수비의 오버래핑 역시 닫혀버렸다. 이 경우 먼 거리에서의 슈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번 대회 특성상 골키퍼를 맞고 나온 리바운드 볼에서 많은 골이 나온 데다, 훌륭한 슈터를 여럿 보유했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공략법이었다. 알제리는 측면에 몰려 있다가 중원이 텅 비는 현상을 전반 중반부터 노출했고, 독일은 슈바인슈타이거, 크로스, 외질, 람 등이 틈만 나면 폭격을 가했다. 단, 28개를 시도한 독일의 슈팅 중 68%에 해당하는 19개가 골키퍼 정면으로 향한 건 큰 아쉬움이었다.

멕시코의 오초아, 코스타리카의 나바스, 그리고 알제리의 음볼리까지. '특급' 골키퍼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독일의 숱한 슈팅 포탄을 혈혈단신 막아낸 음볼리는 세이브를 10개나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이 선수를 조연으로 밀어내고 연장 전반 2분 직접 주연으로 올라선 건 쉬얼레. 회베데스가 나오면서 끊고, 뮐러가 측면으로 폭넓게 움직인 게 주효했다. 뮐러가 골문에서 멀어질 때 그 공간으로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쉬얼레의 존재 이유였다. 알제리의 중앙 수비 할리시는 후반 막판 발생한 근육 경련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더뎠는데, 이 장면에서도 스텝을 빨리 밟으며 다리를 뻗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제리는 뒷공간을 노출하면서도 전진할 수밖에 없었고, 연장 후반 14분에는 외질에 추가골까지 얻어맞는다. 두 팀 선수들이 경련으로 쓰러진 지 오래, 슬리마니는 경합 과정에서 넘어진 뒤 아예 일어나질 못했다. 놀라운 건 그 이후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연장 후반 16분, 페굴리의 크로스를 받은 자부가 끝까지 따라가 추격골을 뽑아낸다. 이윽고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선수들을 독려하던 백발의 노장은 '눈물'을 흘린다. 현실적으로 뒤집기가 불가능한 스코어에서도 연장 후반 인저리타임까지 끈덕지게 싸우던 모습.? 1승 제물로 여겨온 알제리엔 우리에겐 없던 '특별한 것'이 있었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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