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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성의 월드컵, 이번에도 부상이 문제였다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4-06-26 15:46 | 최종수정 2014-06-26 17:19


2014 브라질월드컵 홍명보호가 러시아와 결전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한국시간) 쿠이아바 아레나 판타날 경기장에서 적응훈련을 실시했다. 하대성이 훈련중 갑작스런 왼발목 통증을 호소해 최종훈련에서 제외됐다.
대표팀은 18일 이곳 쿠이아바에서 러시아와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예선 1차전 경기를 펼친다.
쿠이아바(브라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6.17/

하대성(29·베이징궈안)의 축구 인생은 부상과 늘 함께 했다. 학창시절 고질적인 통증을 안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끈기와 인내로 벼텼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프로무대에 가까스로 데뷔했고 만 29세에 생애 첫 월드컵 출전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그의 첫 월드컵은 다시 아픔이었다. 늘 괴롭혀온던 부상이 월드컵 조별리그 무대 앞에서 다시 그의 발목을 잡았다.

통증과 눈물로 보낸 학창시절

중학생 시절까지 1m60의 작은 키였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왜소한 체격에 힘을 쓰지 못했다. 주위에서 축구를 그만두라는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버티고 버텼다. 다행히 부평고 1학년때 20cm가 넘게 성장했다. 축구 인생의 꽃이 피는가 싶었다. 갑자기 커버린 것이 되려 악재였다. 축구 선수에게는 생명인 무릎에 성장통이 찾아왔다. 러닝을 하기조차 힘들었다. 당시 전국대회를 평정하던 동기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그는 1년간 재활에만 매진했다. 몸에서 느끼는 통증 이상으로 마음속 아픔이 더 컸다. 결국 1년간 몸집을 불리며 미래를 기약했다. 하대성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그라운드에서 자기 자리를 되찾았다. 마지막 전국대회인 전국체전에서 전경기 선발 출전해 최다골을 터뜨리며 부평고에 우승컵을 안겼다. 너무 늦은 활약에 명문대 진학은 무산됐지만 울산 현대에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며 어렵사리 프로 무대를 밟았다. 그의 축구 인생은 시작부터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전지훈련 첫날 찾아온 불의의 부상

프로 인생도 초기에는 쉽지 않았다. 고질인 무릎 통증이 재발하며 울산과 이별했다. 대구로 이적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되찾았다. 그는 전북과 FC서울을 거치며 프로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올시즌에는 이적료 180만달러(약 18억원)를 받고 중국의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다. 지난 1월, 그는 홍명보호의 브라질-미국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며 월드컵 출전의 꿈을 키웠다. 기대가 가득찬 첫 훈련, '아차' 싶었다. 쿠퍼테스트를 시행하다가 오른쪽 종아리에 무리가 왔다. 처음에는 가벼운 근육 부상으로 생각했지만 1주일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결국 중도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에도 그의 사전에 '포기'는 없었다. 베이징 궈안에서 재활 훈련에 매진한 그는 이적 첫 해부터 팀의 주축선수로 자리매김하며 다시 월드컵을 향해 뛰었다.

가슴으로 울어도 포기는 없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대표팀과의 동행이 시작됐다. 기성용(25·스완지시티)의 백업인 '조커' 역할이었지만 큰 꿈을 그렸다. 세트피스에서 기성용과 함께 코너킥을 담당하면서 킥 감각을 끌어 올렸다. 홍명보호의 '히든카드'로 출격을 기다렸다.

지난 17일 그는 다시 가슴으로 울었다.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러시아전을 하루 앞두고 공식 훈련을 하던 중 왼쪽 발목에 통증을 느꼈다. 이번에도 가벼운 부상일거라 생각했다. 검진 결과 만성 염좌 증세였다. 러시아전에 이어 알제리전마저 건너 뛰었다. 벨기에와의 최종전에 시선을 맞췄다. 그는 끝내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26일 벨기에전을 앞두고 열린 공식 훈련에서도 그는 쓸쓸히 그라운드 주변을 홀로 걸었다. 끝내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의 기회는 이렇게 조별리그가 끝날 때까지 그를 외면했다. 그러나 하대성은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축구 인생은 늘 그래왔다.
상파울루(브라질)=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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