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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부일체]⑭유재영 감독이 한국영에 보내는 편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4-05-29 07:22


문성고 시절 우승 후 카퍼레이드를 하는 한국영. 사진제공=한국영 가족

TO. 국영이에게.

국영아, 문성고 유재영 선생님이다.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어색하구나. 포천중 시절에 처음 본 네가 '꿈의 무대' 월드컵까지 나간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구나.

중학교 때 네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많은 선수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네가 가장 눈에 띄었다. 호리호리한데 볼을 차는게 고집이 있어 보였다고나 할까. 굉장히 열심히하고 의욕이 좋았어. 그때 너를 스카우트하겠다고 생각했지.

너와 함께 하는데는 행운이 따랐어. 네가 아마도 포천중에서 의정부고로 진학하기로 되어 있었을꺼야. 그런데 네가 큰 물에서 뛰고 싶다며 과감히 용인축구센터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너를 데려올 수 있었지. 그때 네가 참 열심히 테스트를 받았잖아. 테스트 받으러 온 학생 중에 네가 최고였지.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그때 다른 테스트생들의 실력이 떨어져서 실망했다고 들었다. 사실 잘하는 녀석들은 모두 일찌감치 진학이 결정된 상황이었고, 몇명을 찾기 위해 테스트를 한거 였어. 실망해서 다른 곳을 알아보는 너를 데려오기 위해 네 아버지랑 소주 많이 마셨다.

막상 신갈고로 오고 초반에 참 힘들어했잖아. 그때 생각해보면 좋은 선수들이 많았지. 1년 선배로 김보경(카디프시티)도 있었고, 박준태(전남) 이승렬(전북)도 있었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어했던 네 모습이 기억난다. 내 앞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 때 내가 해준 말 기억나니? '열심히 해라.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네가 진다고 생각하지 마라. 주변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기회다'고 했는데. 네가 그 말을 잘따라줘서 고마웠단다.


어린시절 한국영. 사진제공=한국영 가족
힘든 시기를 넘기더니 금방 좋아지더라. 너 같은 연습벌레는 처음 봤다. 운동 밖에 모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선수가 너였어. 내가 지도자 하면서 운동 하지 말라고 말렸던 애는 아마 네가 처음일거다. 그래도 몰래 운동하다가 '운동병'이라는 것도 걸리고. 그게 아마 네가 월드컵까지 가게 된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

그러다가 내가 강릉의 문성고로 옮기게 됐지. 그게 네 2학년때 일거다. 나한테는 모험이었어. 그래도 내 축구를 아는 녀석을 데려가는게 좋겠다 싶어서 4명에게 물어봤지. 그 중에 하나가 국영이 너였어. 1학년 때부터 네 가능성을 누구보다 많이 봤으니까. 너도 고민이 많았을거다. 그래도 나를 믿고 따라와줘서 고마웠다. 선수가 도에서 도로 전학하게 되면 6개월간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조항도 있었는데 말야. 그래서 선생님이 지인을 통해 너를 독일 베르더 브레멘으로 유학을 보냈다. 네가 빨리 성장할거라는 믿음이 컸지만, 미안함도 있었고. 역시 항상 열심히 하는 너인만큼 독일에서 많이 배워왔더구나. 브레멘 관계자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참 열심히 운동한다'고 칭찬하는 것을 듣고 뿌듯했다.

네가 돌아오고 바로 나간 제37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고교대회에서 우승을 했지. 신생팀이 참가한 첫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도 그때부터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고 말야. 바로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됐지. 박경훈 감독에게 네 추천을 했는데 워낙 성실하고 잘하니까 곧바로 인정하더라. 물론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국제경험도 쌓고 네가 크는 계기도 됐을거야.


포천중 시절의 한국영(왼쪽에서 다섯번째). 사진제공=한국영 가족

너의 월드컵 출전이 기쁜 것은 2년 전 아픔을 극복했기 때문이야. 런던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찾아온 부상. 영국까지 건너 갔다가 돌아온 네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겠니. '기회는 또 온다. 실망하지 말고 치료잘해라. 열심히 하면 기회올 것이다'고 했는데 말하면서도 선생님 마음이 아팠다. 묵묵히 이겨내는 네 모습을 보면서 네가 얼마나 좋은 마음을 가졌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에는 제발 다치지 말고 네 기량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그게 선생님의 바람이다.

축구적으로 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조금 더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 네 색깔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해. 원래 네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봤잖아. 지고 있는 경기에서는 스트라이커로 나가기도 하고. 네가 참 공격적으로도 잘할 수 있는 선수인데 너무 팀만 생각해서 수비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있다. 네 뜻을 펼치고 와라. 모두가 뛰고 싶어하는 월드컵 아니냐. 그래서 유럽도 가고 네가 원하는 무대를 누볐으면 좋겠다. 국영아, 화이팅!

FROM. 너를 항상 응원하는 유 선생님이.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유재영 문성고 감독. 사진제공=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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