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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눈물 대신 미소 택한 박지성 "2002년 가장 즐거웠다"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4-05-15 07:39


'박지성이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이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깜짝 은퇴를 선언했다. 올 시즌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번에서 1년 간의 임대 생활을 마친 박지성은 원 소속팀 잉글랜드 퀀즈파크 레인저스로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네덜란드 언론은 무릎 부상에 시달린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할 것으로 보도 했었다. 부모님과 함께 참석한 박지성이 기자회견에서 은퇴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05.14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은퇴 기자회견, 어머니와 팬들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힘들었던 순간을, 팬들은 감동과 환희의 날들을 머릿속에 떠 올렸다. 그러나 주인공은 눈물 대신 미소를 선택했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33)이 24년간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났다. 14일 경기도 수원의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끝내고 은퇴를 한다. 지금 무릎 상태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걸 인지했다." 그라운드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지만 결단을 내렸다. 24년간의 축구 선수 생활과 14년간의 프로 인생. 그는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도 없었다. "어제까지도 눈물이 안났다. 오늘은 나오려나 했는데 역시 눈물이 안난다." 박지성은 환한 미소로 은퇴를 발표했다. 일찌감치 찾아온 5월의 여름, 24년 축구 인생을 정리하는 그의 은퇴 기자회견은 한시간 동안 뜨겁게 진행됐다.


후회 대신 추억을 그리다

은퇴를 선언한 그는 딱 한가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릎 부상 외에 아쉬운 순간은 없다." 행복한 추억, 소중한 기억이 많다. 박지성은 선수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2년을 꼽았다. "내 선수 생활 중 한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단연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어렸을 때부터 국가대표가 돼 월드컵에 출전하는게 꿈이었다. 2002년에는 막내라 어떤 부담감도 없었다. 가장 즐겁게 축구를 했다." 2002년, 한국 축구에 새로운 레전드가 탄생했고,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도 2002년 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월드컵에 출전할 기회를 주셨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데려가주셨다. 축구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 레벨에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소속팀마다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다. 박지성은 AC밀란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득점을 터트리며 유럽 무대의 자신의 이름을 알린 2004~2005시즌(에인트호벤)과 맨유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2010~2011시즌을 떠 올렸다.


박지성 스타일

그는 유럽에서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팀을 위해 헌신했다. '두 개의 심장', '언성 히어로(Unsung Hero)'는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다. 그는 "내 장점은 활동량이었다. 내가 현란한 테크니션이 아니라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내 방식대로 축구를 즐겁게 했다"고 했다. 프로생활을 평점으로 매겨달라는 질문에 "10점 만점이라면 좋겠지만 완벽한 선수는 없다. 나도 부족함이 많았다. 7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7점은 최우수선수도, 최악의 선수도 아니다. 제 역할을 할 경우 받는 점수다.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선수, 박지성이 그랬다.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이미지도 비슷했다. 박지성은 "많은 분들이 경기장에 있을 때 믿음이 가는 선수라고 생각해줬으면 영광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소박한 본인의 평가와 달리 세계 축구무대는 그를 아시아축구의 선구자로 평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했던 선수이고, 선구자였다'고 박지성을 설명했다.


가족 그리고 새 가족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자신의 '레전드'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부모님께 진 빚을 갚으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박지성은 은퇴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개인'을 버린 아버지 박성종씨와 어머니 장명자씨. 항상 그랬듯, 부모님은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박지성의 뒷바라지를 계속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박지성은 간소한 기자회견을 원했단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는 세류초등학교 시절부터 에인트호벤까지 입었던 유니폼 9개에 대표팀 유니폼 1개 등 총 10개의 유니폼이 자리해 있었다. 축구 인생 첫 축구화와 마지막 축구화도 있었다. 아들의 축구인생 시작과 끝을 모두 기념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이 때문에 충돌도 있었다. 박씨는 "아침에 지성이가 유니폼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며 웃었다. 어머니 장씨는 한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지성이 "눈물이 안난다"는 발언을 하자, 장씨의 눈물이 시작됐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담긴 눈물이었다. 박지성은 "어머니는 내가 부상으로 고생하는걸 많이 보셔서 은퇴를 아쉬워하지 않으실 것 같다. 더 빨리 은퇴하길 바라셨다"고 했다. 아들이 웃음으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이 모두 끝나자 꽃다발을 든 '예비신부' 김민지 전 SBS아나운서가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피앙세의 등장에 박지성은 부끄러운듯 '어색한' 미소를 보였고 예비 시아버지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넘쳐났다. 눈물 대신 웃음을 택한 레전드의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수원=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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