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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은퇴 기자회견, 어머니와 팬들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힘들었던 순간을, 팬들은 감동과 환희의 날들을 머릿속에 떠 올렸다. 그러나 주인공은 눈물 대신 미소를 선택했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33)이 24년간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났다. 14일 경기도 수원의 박지성축구센터에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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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선언한 그는 딱 한가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릎 부상 외에 아쉬운 순간은 없다." 행복한 추억, 소중한 기억이 많다. 박지성은 선수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2년을 꼽았다. "내 선수 생활 중 한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단연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어렸을 때부터 국가대표가 돼 월드컵에 출전하는게 꿈이었다. 2002년에는 막내라 어떤 부담감도 없었다. 가장 즐겁게 축구를 했다." 2002년, 한국 축구에 새로운 레전드가 탄생했고,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도 2002년 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월드컵에 출전할 기회를 주셨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데려가주셨다. 축구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밝혔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 레벨에서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소속팀마다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다. 박지성은 AC밀란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득점을 터트리며 유럽 무대의 자신의 이름을 알린 2004~2005시즌(에인트호벤)과 맨유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던 2010~2011시즌을 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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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자신의 '레전드'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부모님께 진 빚을 갚으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박지성은 은퇴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개인'을 버린 아버지 박성종씨와 어머니 장명자씨. 항상 그랬듯, 부모님은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박지성의 뒷바라지를 계속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박지성은 간소한 기자회견을 원했단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는 세류초등학교 시절부터 에인트호벤까지 입었던 유니폼 9개에 대표팀 유니폼 1개 등 총 10개의 유니폼이 자리해 있었다. 축구 인생 첫 축구화와 마지막 축구화도 있었다. 아들의 축구인생 시작과 끝을 모두 기념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이 때문에 충돌도 있었다. 박씨는 "아침에 지성이가 유니폼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며 웃었다. 어머니 장씨는 한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지성이 "눈물이 안난다"는 발언을 하자, 장씨의 눈물이 시작됐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담긴 눈물이었다. 박지성은 "어머니는 내가 부상으로 고생하는걸 많이 보셔서 은퇴를 아쉬워하지 않으실 것 같다. 더 빨리 은퇴하길 바라셨다"고 했다. 아들이 웃음으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이 모두 끝나자 꽃다발을 든 '예비신부' 김민지 전 SBS아나운서가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피앙세의 등장에 박지성은 부끄러운듯 '어색한' 미소를 보였고 예비 시아버지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넘쳐났다. 눈물 대신 웃음을 택한 레전드의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수원=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