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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활을 함께 했던 문선철 보인고등학교 체육부장(47)의 기억 속 구자철(25·마인츠)의 모습은 지금과 같았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리더십이 강했으며, '구글'(구자철의 성 '구'와 '오글거리다'를 합친말로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낯간지러운 말이나 행동을 자주 해 붙은 구자철의 별명)거렸다.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어느덧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성장한 구자철. 그의 과거를 문 부장의 얘기를 통해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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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막상 훈련을 시작하니까 체력적인 부분이 다른 친구들에 안되더라고요. 물론 기술적인 면은 그때도 좋았어요.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이나 패스는 그 연령대에서 보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말랐으니까 근력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근성만은 대단했죠. 한번은 강릉전지훈련에서 강릉농고와 시합을 했어요. 그날 비가 많이 내렸어요. 여기에 잔디도 아니었으니 진흙에서 뛰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전반만 뛰게 하고 교체시킬려고 했는데 끝까지 뛰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버려뒀어요. 근데 경기가 끝난 후 기절한거에요. 응급실에 가서 응급 조치를 하고, "왜 그렇게 미련하게 뛰었냐?"고 물었더니 "다 쏟아내고 싶었어요. 조절이 안되네요"라고 웃더라고요. '아, 이 놈은 뭘해도 되겠다' 싶었죠. 그 뒤로도 경기에 나가면 정말 죽을 것처럼 뛰었어요. 고3 초에는 빈혈도 있었는데 금방 극복했어요. 그 정도로 악바리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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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자신감과 자존심을 내세운 것은 아니에요. 너무 성실했거든요. 대표선수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는 흔들리지 않고 전진하는 모습이 고교생이 아닌 프로선수 같았어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훈련일지를 빼곡히 촘촘하게 작성했어요. 정말 정성들인 일지였죠. 지금도 자철이보다 잘 쓴 일지를 본적이 없어요. 아버님 얘기 들어보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썼다고 하더라고요. 축구 외에도 한문이나 영어 숙제를 많이 내줬는데 항상 성실히 잘해왔어요.
리더십도 대단했어요. 주장을 시켰는데 애들을 잘 이끌었죠. 특히 자기 의견을 내는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당시 제가 좀 엄했거든요. 그래도 팀을 위해서 할말은 하더라고요. 아, 그때도 오글거리는 말을 잘했어요. 너무 진지하게 말을 했죠. 애늙은이 같았어요. 지금도 진지하게 오글거리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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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철아, 월드컵을 즐겨라
선생님이 중대부중에 있다가 1999년도에 모교인 보인고로 전근을 왔어. 그때 마음을 먹었던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훌륭한 선수를 키워보자고 했지. 네가 선생님의 꿈을 이루어준 첫번째 선수다. 보인고 역사상 첫 월드컵 출전선수이기도 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밝은 너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도 느낀 바가 많단다. 선생님이 인성을 강조했잖아. 주변에서 너의 인성을 칭찬할때마다 아주 기분이 좋단다.
자철아, 드디어 월드컵이네. 월드컵이 국민들 입장에서는 성적이 관심사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대단한 영광이라고 생각해. 물론 중압감이나 압박감도 느끼겠지만, 모든 국민들의 관심속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을 즐겼으면 좋겠다. 네가 늘상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했던 얘기가 생각나는구나. '우리가 여기 왜 있니, 여기에 있는 것을 과거부터 꿈꿔왔잖아.' 오랫동안 꿈꿔온 바로 그 월드컵이다. 꼭 이기겠다는 중압감보다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게 선생님의 바람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