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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은 왜?]'박 장군 VS 최 장군', '탐라대첩' 8골 사연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3-05-26 18:17 | 최종수정 2013-05-27 08:04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탐라대첩', 전시라고 했다.

경기장 밖에는 전차(제주방어사령부와 협조 군용 물품 전시회)가 등장했다. 별 3개를 단 군복을 입은 박경훈 제주 감독은 킥오프직전 그라운드에 출현했다. 출사표는 비장했다. "2008년 8월 이후 한 번도 못 이겼다. 탐라대첩이다. 전시와 같은 각오로 꼭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악연은 2008년 8월 27일부터 시작됐다. 홈경기에서 1대2로 발목을 잡힌 이후 무려 15경기 연속 무승(5무10패)의 늪에 빠졌다. 안방에서도 2006년 3월 25일 이후 10경기 연속 무승(5무5패)이었다. 상대는 FC서울이었다. 최용수 감독은 "매경기가 전쟁인데 왜 하필 우리 팀에만…"이라며 말끝을 흐린 후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행사도 많지 않느냐. 호국보훈의 달은 6월인데 시점이 헷갈린 것 같다"고 웃었다. 그리고 "흐름상 이번 경기는 꼭 잡아야 하는 경기"라며 양보없는 혈전을 예고했다.

2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은 전장이었다. 무려 8골이 터졌다. 하지만 누구도 웃지 못했다. 전후반 90분동안 6골을 주고 받은 후 후반 인저리타임에 또 다시 한골씩을 교환했다. 4대4, 결과적으로는 제주의 탐라대첩은 실패였다. 하지만 서울도 아쉬움이 진한 한 판이었다.

제주의 스리백 모험, 서울의 미소

"상대도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로선 큰 모험이다." 박 감독은 서울전에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었다. 수비수 오반석의 경고 누적과 허재원의 부상으로 전술에 변화를 줬다. 지난해 4월 29일 경남전에서 십자인대를 다친 홍정호가 복귀했다. 13개월 만의 K-리그 첫 선발 출격이었다. 홍정호의 왼쪽에 이 용, 오른쪽에 황인호가 섰다. 황인호는 K-리그 1경기 출전에 불과한 새내기다. 박 감독은 "오른 윙백에 설 자원이 없다. 마다스치와 이 용 모두 왼발잡이다. 스리백으로 경기를 시작한 것은 올시즌 처음"이라며 "짧은 기간 전술을 준비했다. 서울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풀어 놓아서는 안된다. 밀착된 프레싱을 가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험은 패착이었다. 서울은 중원을 장악하며 전반 19분 고요한, 전반 37분 몰리나가 잇따라 골망을 흔들었다. 박 감독은 "결국에 미드필드를 장악하지 못해 힘든 경기를 했다"고 고백했다. 그때만 해도 최 감독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서울의 평정심과 제주의 변신


박 감독은 패착을 인정하고 일찌감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반 41분 황인호 대신 공격 자원인 배일환을 투입하면서 기본 시스템인 4-2-3-1로 전환했다. 2-0으로 앞선 서울은 애매한 심판 판정에 평정심을 잃었다. 전반 28분 데얀의 골에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전반 39분 아디의 페널티킥 파울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오심 여부를 떠나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흔들리면 안된다. 그 부분을 간과했다. 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평정심을 갖고 정상적인 경기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제주는 전반 40분 페드로가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했다. 서울이 2-1로 리드한 채 전반을 마쳤다. 제주가 안정을 찾았다. 박 감독의 변화가 주효했다. 빠른 역습이 살아나면서 페드로가 후반 2분과 12분 잇따라 골을 터트리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리그 9호골로 득점 단독 1위에 올랐다. 전세를 뒤집었다. 박 감독은 "4-2-3-1로 변화하면서 중원의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하대성과 고명진의 패스를 차단하라고 주문했다. 다행히 오승범과 윤빛가람이 미드필드를 장악하면서 경기를 주도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최 감독은 교체카드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후반 11분 투입한 김현성을 37분 다시 교체했다. 그는 "최근 경기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실망스럽다. 본인이 해야 하는 경기력에 반도 못했다. 본인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헤쳐나가야 한다.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복이 없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교차한 아쉬움, 8골의 행복

골네트는 후반 39분 다시 출렁였다. 데얀이 최효진의 크로스를 동점골로 연결했다. 후반 45분에서 시간은 멈췄다. 인저리타임 4분이 주어졌다. 극적인 골에, 극적인 반전이 연출됐다. 서동현이 후반 46분 골망을 흔들었다. 4-3, 골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 종료 직전 몰리나가 얻은 페널티킥을 김진규가 골로 연결했다. 그리고 휘슬이 울렸다.

아쉬움이 교차했다. 박 감독은 "최근 들어 4대4 경기는 처음인 것 같다. 감독으로서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기쁨을 가졌다가 다시 힘든 상황이 됐다. 피를 말렸다. 힘들었다. 또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점이 아쉽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최 감독도 "많은 팬들 앞에 많은 골이 터졌다. 두 팀 모두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펼쳤다. 그러나 아쉽다. 다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점골까지 넣은 것은 만족한다"고 했다.

축구는 전쟁이다. 제주와 서울의 '5·26 대전'은 올시즌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될 만한 일전이었다.
서귀포=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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