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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박지성(32)을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두 선수가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3월 26일, 중국 상하이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된 북한이 홈 경기를 거부하면서 제3국인 중국에서 맞대결이 치러졌다. 북한은 그해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일본과 각각 무승부를 거두면서 주목을 받던 터였다. 그 중심에 '까까머리 공격수' 정대세가 있었다.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는 재일교포 3세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던 때였다. 2007년 무릎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던 박지성은 2월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감각을 조율한 뒤 북한전에 나섰다. 하지만 승부는 0대0으로 마무리 됐고, 서로의 실력 만을 확인한 채 싱겁게 막을 내렸다. 1년 뒤 두 번째 맞대결 기회가 왔다. 남북이 최종예선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이 본선행을 거의 확정한 반면, 북한은 매 경기가 결승전과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주장 완장을 찬 박지성이나 최전방 공격을 책임지는 정대세 모두 물러서기 힘든 승부였다. 박지성이 웃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속에 경기장을 휘저으며 한국의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정대세는 후반 초반 크로스바를 맞히는 헤딩슛을 시도했으나, 골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판정에 아쉬움을 삼켰다.
애끓는 박지성 사랑
또 세월이 흘렀다. 독일 무대에서 실패를 맛본 정대세는 절치부심 끝에 K-리그 클래식의 문을 두드렸다.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기대반 우려반 속에 시작한 시즌 전반기, 9경기 동안 5골-2도움을 올렸다.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박지성은 세월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맨유에서 QPR로 유니폼을 갈아 입은 뒤 악몽이 시작됐다. 주장 완장을 빼앗겼고 팀은 곤두박질 쳤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눈초리는 싸늘하다. 올 시즌을 마친 박지성은 이적이 유력시 되고 있다
남북의 아이콘, 한솥밥 먹는다면?
. 박지성의 고향인 수원에서 활약 중인 정대세에게는 '새로운 꿈'을 꿔 볼 만한 상황이다. 그의 생각은 어떨까. "(박지성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꿈 같은 이야기인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함께 그라운드를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박지성의 차기 행선지로는 유럽 뿐만 아니라 중동, 미국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일각에선 K-리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정대세는 "이왕이면 수준 높은 무대에서 계속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도 "수원에 올 기회가 있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리며 미소를 지었다. 정대세는 박지성의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라운드에서 팀을 위해 계속 땀흘리는 선수가 필요하다. (박지성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선수다. 그런 선수와 함께 뛴다면 기량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할 것이다.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꿈이 이뤄지지 말란 법은 없다. 운명은 어디로 튈 지 모른다. 정대세의 바람이 현실이 되는 순간, K-리그 클래식엔 또 하나의 스토리가 수놓일 것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