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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퍼거슨' 맨유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5-16 20:41 | 최종수정 2013-05-21 08:24


사진=TOPIC/Splash News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없는 맨유는 상상하기 어렵다.

퍼거슨 감독은 27년 동안 맨유를 이끌었다. '파리 목숨'이라 불리는 감독이 한 팀에서만 27년간 지휘봉을 잡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룬 성과도 어마어마하다. 1986년 11월 22일 맨유 사령탑에 오른 뒤 모두 38개의 우승컵을 수집했다. 단일 클럽의 지도자가 가진 기록으로는 그 누구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수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FA컵, 리그컵 뿐만 아니라 유럽챔피언스리그, FIFA클럽월드컵 등 클럽팀 감독으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렸다. 맨유의 전설인 보비 찰턴은 "베컴, 긱스 없는 맨유는 상상할 수 있지만, 퍼거슨 감독 없는 맨유는 상상하기 어렵다"며 퍼거슨 감독의 능력을 칭찬한 바 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 그 자체였다. 그의 구상 아래 맨유는 명문 구단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유소년 육성부터 선수 영입, 구단 운영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지독한 일벌레였던 퍼거슨 감독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못된 선택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 그는 치밀한 전략가이자 타고난 리더였고, 탁월한 경영자였다.

퍼거슨 감독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 맨유는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손길 아래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모예스 감독 선임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조제 무리뉴 감독과 같이 승리에 익숙한 감독이 맨유에 어울린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맨유는 일단 신임 감독에게는 이례적으로 6년 계약을 안기며 모예스 감독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퍼거슨 감독 역시 "모든 일에서 성공이 보장된 선택은 없다. 가끔씩은 어려운 시기도 경험해야 한다. 희생 정신과 인내심이 특히 필요하다. 모예스가 얼마나 성실한 감독인지 잘 알고 있다. 축구 하나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한 사람이다. 맨유 감독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며 팬들에게 모예스 감독을 지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포스트 퍼거슨' 이후 달라질 맨유의 모습이다. 일단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리뉴 대신 모예스 감독을 선임한 이유는 기존 맨유의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맨유는 말콤 글레이저가 구단을 인수한 이후 대형 부채를 안고 있다. 퍼거슨 감독의 수완 덕에 대출금 중 상당 부분을 상환했으나 여전히 4억 유로(약 5740억원) 정도의 부채가 남아 있다. 유스팀 선수들을 발굴, 육성해야 함은 물론 선수 영입 및 판매에 있어 영리한 운영이 필요하다. 모예스 감독은 유소년 육성과 선수 영입에 있어 탁월한 안목을 자랑한다. 에버턴 유스 출신의 웨인 루니, 잭 로드웰 등은 모예스 감독의 작품이다. 에버턴 시절 없는 살림 속에서도 팀 케이힐(220만유로)과 미켈 아르테타(280만유로), 졸레온 레스콧(650만유로), 필 자기엘카(600만유로), 스티븐 피에나르(300만 유로), 니키차 옐라비치(700만 유로) 등을 영입하는 수완을 보였다. 모예스 감독은 클럽을 이끌어나가는 리더로서 장기적인 비전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퍼거슨 감독과 비슷하다. 맨유가 향후 몇년간 퍼거슨 감독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예스 감독 체제하에서 급진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에는 다소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에버턴에서 모예스 감독과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 대거 영입될 것으로 보인다. 마루앙 펠라이니, 베인스, 자기엘카 등이 후보로 꼽힌다. 이들은 퍼거슨 감독도 영입을 노렸던 선수이니만큼 맨유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루니다. 에버턴에서 데뷔한 루니는 맨유 이적과 사생활 문제를 둘러싸고 모예스 감독과 불화를 겪었다. 특히 과거 자서전에서 모예스 감독을 비하한 것이 발단이 되어 법정공방까지 치닫는 등 원수지간이 된 지 오래다. 루니는 이미 올시즌 팀내 입지가 크게 줄어든데다 모예스 감독의 부임까지 겹치며 타구단 이적설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모예스 감독은 루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퍼거슨 감독, 라이언 긱스와 함께 긴급회동을 가졌다. 모예스 감독은 일단 루니를 안고가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루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맨유에서 모예스의 리더십이 연착륙할지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밖에 긱스, 리오 퍼디낸드 등 맨유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들과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도 변수다.

과거 맨유 감독직을 수행했던 톰 도커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예스에게 축하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불쌍하다. 어떻게 불가능의 뒤를 이을 수 있겠나"고 했다. 퍼거슨 감독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부담이라는 말이다. 중소 클럽을 이끌었던 모예스 감독이 맨유같은 빅클럽을 운영하는 노하우가 없다는 것도 불안요소다. 그러나 포스트 퍼거슨은 언젠가 맨유에게 다가올 숙명이었다. 에버턴과 달리 거금을 손에 쥔 모예스 감독이 어떻게 맨유를 바꿔놓을 것인지. 해외 축구팬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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