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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대신 견고' 제주발 돌풍이 심상치 않은 이유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5-20 13:24 | 최종수정 2013-05-21 08:19



화려함은 떨어졌지만, 견고해졌다.

제주의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는 포항에 이어 K-리그 클래식 2위에 올라있다. 최근 5경기에서 3승2무다. 호재가 많다. 지긋지긋한 원정징크스를 수원에서 마감했다. 최전방 공격수 서동현이 마침내 득점포를 터뜨렸고, '올시즌의 키플레이어' 윤빛가람도 점차 팀에 적응하고 있다. '수비의 핵' 홍정호도 돌아왔다.

제주의 시즌 초반 선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주는 준우승을 차지한 2010년을 제외하고 화려한 시즌 초반을 보낸 뒤 여름을 기점으로 순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2011년에는 10라운드부터 3위권을 유지했지만 18라운드부터 순위가 떨어져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2년도 마찬가지였다. 6라운드에 선두까지 올랐던 제주는 14라운드부터 추락했다. 이유가 있다. 제주는 빠르고 정교한 패싱게임을 즐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제하에 상대 미드필드가 전진할 수 없도록 빠르게 볼을 돌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같은 패싱게임은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을때 효과적이다. 동계훈련의 성과가 가장 두드러지는 시즌 초반 제주의 패싱게임은 위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이 다가오면 경기력이 저하된다. 체력 때문이다. 섬팀의 특수성 때문이다. 섬이 연고지인 제주는 원정 이동거리가 다른 팀보다 길다. 기상상황에 따라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원정에 따른 피로가 다른 팀 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이러면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올시즌은 다르다. 험난한 여름을 넘을 수 있는 큰 무기가 생겼다. 견고함이다. 사실 화려함만 놓고 본다면 지난시즌에 미치지 못한다. 특유의 패싱게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플레이메이커' 송진형이 다소 부진하다. 산토스의 공백을 메워줘야 하는 페드로는 패스보다는 드리블에 능한 선수다. 박경훈 감독도 패싱게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지난시즌에 비해 좌우 측면 공격수들을 더 넓게 벌렸다. 공격진에서도 내려와서 볼을 받아주던 산토스까지 없어 전체적으로 미드필드가 넓게 퍼진 모습이 있다. 짧은 패스가 잘 안되는 이유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대신 수비적으로는 안정감이 더해졌다. 제주는 올시즌 9골만을 내주며 리그 최소 실점팀으로 거듭났다. 지난시즌과 비교하면 환골탈태다. 지난시즌 제주는 홍정호의 부상 이후 수비가 급격히 무너졌다. 매경기 실점했다. 수비가 흔들리면서 미드필드가 전진하지 못했고, 그 결과 팀 컬러까지 흔들렸다. 그러나 올시즌은 주장이자 살림꾼 오승범을 축으로 견고한 수비를 펼치고 있다. 특히 중앙 수비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다.

박 감독은 겨우내 수비진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노력의 결과다. 지난시즌 경험을 쌓은 오반석이 제 몫을 다해주고 있으며, 올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이 용은 매경기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홍정호가 복귀했고, 마다스치도 언제든 투입이 가능하다. 대구에서 영입된 박준혁은 올시즌 최고의 골키퍼로 불릴만큼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공격이 강한 팀은 팬들을 즐겁게 하고, 수비가 강한 팀은 감독을 웃게 한다'는 스포츠의 격언이 있다. 제주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견실한 수비로 매경기 승점을 쌓고 있다. 토대를 단단히 만든 이상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은 없을 것이다. 제주발 돌풍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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